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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Feb 16. 2019

나는 라면을 먹기로 결심했다.

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01. 신라면

나는 또 그 가게의 문을 열었다.

점원들이 수군댄다.


6년 전 가을, 난 후쿠오카에 있었다.

숱하게 간 일본 이건만

그때의 후쿠오카는 유독 황홀했다.

기내식을 제외하곤 3박 4일 간

모든 끼니를 먹었던 '그 가게의 그 라멘' 덕이다.


사실 그럴 생각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발견한 라멘집에서 첫끼로 어쩌다

돈코츠 라멘을 먹었고, 내내 헤어 나오지 못했을 뿐.


국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도톰하고 동그란 기름기,

두텁게 썰려 면 위에 사뿐히 놓인 고기,

살며 늘 먹었으나 살며 늘 사랑스러운 면발.

묵직하고 되직하며 그래서 짭조름한 국물부터

한 수저 호로록하면 바닥까지 순식간이었다.


비단 '여행길의 라멘'만은 아니다.

'우리 집의 라면' 역시 내게 그런 존재다.



맵담큰쫄. 내 인생 푸드, 라면.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떠나기 전 열흘이라 했던가.

라면도 그렇다.

라면 봉지를 집어 든 순간의 꾸깃, 하는 소리부터

설렘은 장장 10분 간 절정을 이어간다.


인덕션에 냄비를 올린다. 세기는 9.

찬장에서 라면을 집어 든다.

진행 속도의 극대화와 뒤처리의 최소화를 위해

모든 봉지는 가위로 뜯는다.

끓어오르는 물의 기포와 아이 컨텍한다.

'한 번 더 털까?' 싶을 딱 그때까지만 분말을 턴다.

콧 속을 파고드는 매운 분자를 음미한다.

계란을 퐁당, 넣어 면 아래 숨긴다.

목표는 절반에서 좀 더. 고체 직전 상태로 익히는 것.

터뜨렸을 때 너무 힘없이 흘러나오지 않을 딱 그 정도.


매콤한 냄새

담백한 계란

얼큰한 국물

쫄깃한 면발


내 오랜 인생 푸드, 라면의 완성이다.

 


4,5,6,70kg+. 살찌는 것에 대한 역사적 공포


하지만 현대인에게 라면은 흉악범이다.

600kcal이 넘는 칼로리와

높은 탄수화물과 염분의 비율 탓.

(신라면은 120g에 606칼로리다.)


그중 가장 라면을 두려워하는 건

단언컨대 '제대로’ 살쪄 본,

이 악물고 그 살을 뺀,

그래서 다시 살찌고 싶지 않은

숙명적 다이어터들이다.

이를테면 나 같은.


서른몇 해 동안 내 몸무게는 꽤 바빴다.

내가 기억하는 내 최초의 몸무게는

6으로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수험생 면책권을 빌미로

아침부터 고봉밥을 먹었다.

신입생의 사교생활을 이유로

밤마다 국그릇으로 술을 마셨고

다음날이면 라면으로 해장을 했다.

...

그렇게 앞자리 7의 충격을 맛보았다.

그 날 후론 체중계를 멀리 했으니

어쩌면 8도 찍어봤을지도.


이대론 안 되겠다 싶은 두 번의 계기로

앞자리를 다시 6 그리고 5 어쩌다 4.

겪어본 자만 아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살은 빠졌으나

나의 DNA에는 앞자리 7+의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행 마냥 설레는 인생 푸드 라면이

7+를 만들어낸 그 시절의 상징이기도 한 셈.


하여 10분 간의 설레는 만남 끄트머리,

마지막 한 가닥마저 흡입하고 그릇을 내려놓는 순간,

난 돌연 불행해지고 만다.


“내가 미쳤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심하곤 한다. 라면을 먹기로.


하지만 여전히 라면은 늘

선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틈틈이 비워지고, 곧바로 채워진다.

때때로 내가 라면을 먹기로 결심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별의 시간은 있었다.

마트에 갈 때마다 애써 라면 코너는 피해 가던 그 시절,

정말 못 견디겠다 싶으면 침대에 가로누워

벤쯔의 삼양라면 5개 아침 먹방을 보며

황홀해하던 그 시절.


하지만 벤쯔가 면발을

영혼 깊숙이 빨아들이는 그 장면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어느 순간 깨달았다.


라면이 주는 10분의 설렘을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포기하며 살 순 없다.

나는 라면을 정말 좋아했다.


살찌지 않은 몸이 주는 행복에 눈이 멀어

라면을 필두로 한

이 세상 모든 JMT의 향연에 눈을 감기엔

내 인생이 너무 심심했다.



라면을 먹기로 결심했다.

남은 건 가장 맛나게 만끽하는 것


박진영도 살찌는 게 싫어

라면을 일 년에 딱 한 번만 먹는다 했다.

비행기에서라나 뭐라나.

잠시 그가 두 손을 비비며

두 눈으론 승무원들의 좌표를

트래킹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라면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냄새부터 서빙되는 그 녀석이 얼마나 설렐까.


그런 그가 젓가락을 든 채

이걸 먹으면 얼굴이 붓겠지

이걸 먹으면 어제 운동한 거 도루묵 되겠지

이걸 먹으면 며칠 또 후회하겠지

이런 생각에서 허우적댄다면 말이다.

누구든 그 모습 보며

어리석다고 혀를 끌끌 차지 않을까.


라면 좋아하니 기왕 먹을 거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매운 냄새 킁킁거려도 보고

면발 후루룩도 해보고

입안에서 오물오물 장난도 치며

그 행복을 ‘만끽’하는 게

맞지 않냐며 훈수도 둘 것 같다.


원래 남의 일일 때 더 잘 보인다고 했던가.

그래서 난 그 훈수를 내게도 두기로 했다.


“먹어, 먹어. 그렇게 좋은 거 참아서 뭐하니.

기왕 먹을 거 만끽하며 먹어. ok?”


라면을 후루룩 들이키는 순간엔

오로지 라면에만 설레는 게 옳다.

이 면발이 식도를 거쳐 내장을 훑곤

온몸 구석구석에 달라붙는 상상 따위

라부장 말마따나 넣어둬야 한다.


더 중요한 건

행복의 종류보다

행복을 만끽하는 자세라고,

서른몇 살의 나는 생각했다.



라면을 먹기로 결심했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내 머릿속에서

‘날씬한 몸’과 ‘라면’이 뜬 배틀이

민방위 훈련이라면

‘일’과 ‘아이’의 배틀은

세계 대전이었다.


난 일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두려웠다.

7+의 몸무게보다 훨씬 더,

아이를 안은 채 거실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미래의 내가 두려웠다.


하나는 어찌어찌 낳았으나

둘은 언감생심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첫째를 키우며 느낀 행복은

라면봉지를 뜯고

계란을 푸는 10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둘째를 낳고야 말았다.

그리고 어김없이 일과의 단절과 맞닥뜨렸다.



내일의 불안을 어찌할 순 없어도

오늘의 행복은 챙겨 먹어야지


아이가 100일이 되었다.

젖을 물릴 때면 아이의 까만 눈동자에

온전히 나만 담긴다.

이제 옹알이를 곧잘 하는데,

누구 음악 하는 사람 좀 알면

그 음악성을 논하고 싶을 정도다.

안아달라 보챌 때는 고맙기까지 하다.

이토록 사랑스런 존재가

이토록 나를 갈망한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이 아이의 우주란 사실에 가슴 벅차다.


하지만 어떻게 늘 그럴까.


아이가 잠든 어두운 밤,

적막 속에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볼 때면

막연한 불안에 사로잡힌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운 후, 나의 삶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일에 대한 미련과 불안.

라면을 먹으며 살 걱정을 하는

바로 그 프레임.


엄습하는 내일의 불안을 떨치고

오늘의 행복으로 돌아오기 위해

주문을 외듯 내게 말을 건다.


“내일 아침만 돼도 지금이 그리울걸?’


라면 면발이 사라지기까지 고작 5분이다.

이 아이가 엄마만 오매불망 찾는 것도 길어야 5년.


...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바로 지금, 여기.

내가 선택한 내 행복을 만끽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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