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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an 13. 2019

싫은 소리를 따뜻하게 하는 5가지 방법

나는 싫은 소리가 싫었다.


하, 지금도 이불킥을 부르는 기억이다.


난 입사한지 한 달 쯤 된 신입사원이었다.

문제는 업무 경험만큼이나

사회생활개념도 백지 상태였던 것.


그 날 난 신입사원의 열정으로

밤새 만들어간 기획안을 상사에게 내민 참이었다.

내딴에는 영혼을 갈아넣었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상사의 책상 앞에 서서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상사의 반응은 어째 뜨뜻미지근만도 못했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장표를 앞으로 뒤로 넘기던 그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흠, 무슨 기획안 흐름이 이리 급해.

신입이긴 하지만 디테일이 너무 딸리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위 직원들의 타자가 갑자기 빨라졌다.

상사는 장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는 듯

연신 키보드 방향키만 눌러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사의 표현이 거칠긴 했지만

입사 한달된 신입사원 기획안이 받을 수 있는

지극히 보통의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내겐

일제 시대 일본 순사의 만행처럼 느껴졌다.

난 나라를 지키려는 독립군마냥

잔뜩 날선 말들을 뱉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그런데요."


그의 놀란 토끼 눈을 감싸고 있던

검은 뿔테 안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란 인간이

싫은 소리, 탓하는 소리를

유난히 못견뎌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남편이 말했다. "일단, 잘 저어."


오늘 늦은 오후.

우린 마실 걸 한 잔 씩 앞에 둔 채

마트에서 털어온 과자 봉지를

막 뜯은 참이었다.


올해가 벌써 2주나 지났다는 말로 시작한 대화는

일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원하는 만큼 내지 못한 성과는

해를 넘어서도 여전한 고민거리였다.

깨작깨작 먹던 과자를 한웅큼 입에 털어넣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휴...... 오빠,

내가 고쳐야 할 게 뭘까?"


남편은 읽던 책의 페이지를 마저 넘기며 답했다.


"일단."


허튼 소리 않는 남편이기에

침을 꼴깍 삼키며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잘 저어."


"어? 저으라고? 뭘? ;;;"


"아까 니가 마차라떼 타줬잖아. 완전 밍밍했거든.

다 먹고 보니 설탕은 다 바닥에 포진해있더라.

난 진심 한 개 뜯어서 두 잔 만든거냐고 묻고 싶었다.

그리고."

(침 꼴깍. 그래 이제 제대로 된 조언 턴?)


"라면은 찬 물에 안 끓이는 걸 추천한다.

팔팔 물이 거품 물면 그 때 투척하라고

봉지 뒤에 한글로 또박또박 써 있거든."


(우걀걀걀 이 남자 뭔 헛소리야)


"정리하면, 천천히.

뭐든 디테일에 충실하면 좋겠단 거야."


마차라떼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신명나게 웃어젖히던 나는

그제야 슈렉고양이 눈빛이 되어

남편 앞에서 자세를 고쳐앉았다.


"오빠. 완전 맞어.

그게 내 문제야. 너무 급한 거."


이토록

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서

명료하게 직언해준 사람은

남편이 처음

.......

은 아니었네?


그때 그 시절

일본 순사 아니 나의 상사도

정확히 저 이야기를 했다.


급하다고.

디테일이 필요하다고.



결국 같은 말이 하나는 따끔하고 하나는 따뜻했다.


상사는 말했다.


"흠, 무슨 기획안 흐름이 이리 급해.

신입이긴 하지만 디테일이 너무 딸리는데?"



남편은 말했다.


"일단 (마차라떼를) 잘 저어.

천천히. 뭐든 디테일에 충실하면 좋겠단 거야.""


결국은 같은 말.

왜 하나는 따끔했고

왜 하나는 따뜻했을까.


수없이 두 상황을 복기해보고서야

그 차이를 알았다.



따끔한 조언을 따뜻하게 하는 5가지 방법


이거였다.


1. 상호신뢰가 형성되어 있는 관계에서만

남편은 분명 나의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다. 10년된 믿음.

상사는 내 이름말곤 아는 게 없었다.

나에 대해 뭘 아냐고 대사치고 싶게스리.


2. 정곡부터 찌르기보단 '가볍게' 시작하며

남편은 일단 날 웃기고 시작했다. 마차라떼 좀 저으라며.

상사는 준비 안된 나를 아픈 말로 찌르고부터 봤다.

방어부터하고 싶게스리.


3. 사람 대신 '에피소드'를 논하되

남편은 '마차라떼'나 '라면'에도 디테일이 필요하다 했다.

상사는 '나란 사람'이 너무 급하고 디테일이 없다 했다.

발끈하고 싶게스리.


4. 단정하는 대신 '내 느낌'을 중심으로

남편은 '내가 마차라떼 먹어보니'라며 자기 감정을 얘기했다.

그때 든 생각 '아, 오빠 입엔 그랬겠네.'

상사는 '니가 쓴 기획서는...' 누가봐도 그렇다는 듯 단정지어 말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나게스리.


5. 피드백 Back 대신 '피드포워드 Forward'를 제시할 것

남편은 '앞으론 라면은 물이 팔팔 끓으면 넣자'고 말했다.

상사는 '니가 써 온 기획서는 디테일이 없어'고 말했다.

대책없이 혼나는 느낌만 잔뜩 들게스리.



+


생각해보니

서른 넷. 나는 그때 상사의 나이가 되었다.


십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며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훈수 둔 것은 몇 번이며

대뜸 아픈데부터 찔렀던 건 또 몇 번일까.

일이 아닌 사람을 비난했던 적도 적지 않았고

많은 경우 '그냥 내 느낌'이 아닌 '누가봐도 니 문제'로

표현해왔던 것도 같다.

무엇보다 상대의 단점을 짚었던 기억은 꽤 되건만

그의 내일을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했던 기억은 드물다.



+


별 내용도 없는 상사의 말 몇 마디가

10년을 사무치더니


별 내용도 없는 남편의 말 몇 마디에

뭔가 괜찮아 질 것만 같다.


따끔한 지적 보다

따뜻한 조언이 힘이 셀 수 있구나.

바람이 못 벗긴 나그네의 옷을

햇살은 벗길 수 있었던 것 처럼.



+


일단,


마차라떼를 탈 땐 설탕까지 완전히.

라면을 끓일 땐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 2가지부터 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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