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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Feb 19. 2019

인생은 가지가지해야 제맛

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02. 가지치즈구이

딸의 편식을 고치려

간식의 중단을 선언했다.


곧 학교에 들어가는 딸은

끼니마다 제 그릇을 비우는 경우가 드물었다.

참다못한 어느 날

난 오후 간식의 중단을 선언했다.

식전에 배가 불러 그러는거라 생각해서였다.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 내가 밥을 쪼금 먹는 것은

사실 배가 불러서가 아니에요.”


이어진 한마디.


”맛이, 맛이 없어서에요!”

 

이번엔 내가 억울했다.

끼니마다 고기 반찬에 밑반찬만 몇 갠데.

내가 무슨 가지반찬 먹으라 한 것도 아니고.



아, 내게 가지는 

‘먹느니 굶을 음식’ 1순위다.

물컹거렸고 비렸다. 

대체 무슨 맛인지 몰라 

간장과 참기름 잔뜩 묻혀 

그 양념맛으로 먹으려거든 

뭐하라 먹냔 말이다. 

그냥 양념만 먹지. 


여튼 가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불과 몇 주 전까진.



고지혈증엔 가지를 먹어야 한단다.


변수가 생겼다. 

남편의 고지혈증 수치가 더 안 좋아진 것. 

급히 고지혈증 치료에 좋단 음식을 찾아보니

어딜가나 가지 타령들 뿐.

먹느니 굶어도 아플바엔 먹어야지.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가지를 돈 주고 샀다.


아, 주부의 숙명이란. 



흠, 이렇게 생긴 애였군. 

마침 냉장고에 치즈가 있길래 얹어

가지치즈구이를 만들었다.



고지혈증 치료에 좋다하니 

남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젓가락을 댔다.

좀처럼 입을 대지 않으려는 딸과는

식후 아이스크림으로 협상했다.

나는, 고지혈증도 없고 

성장기 어린이도 아니니 안 먹는걸로.


오만상을 다 쓰며 한 입 베어문 아이는 

뜻밖에도 빠르게 오물거렸다.

다음 젓가락도, 

그 다음 젓가락도 가지에게 향할 줄이야. 



그제서야 나도 가지를 한 입 베어물었다.


그리곤 과거의 내게 빠르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이 맛을 몰랐다. 서른 몇 해 동안.


요즘말마따나 JMT.

남편은 고기맛이 난다했고

딸은 시식평을 거부한 채 계속 오물거렸다.

난, 채소코너 가지의 좌표만 계속 트래킹했다.



운동, 카레, 영어.

싫어한다 공언해왔던 것들.


살며 나의 핍박을 받아온 건

가지만은 아니었다.


가지

운동

카레

영어

운전

좀비영화

...


누가 말만 꺼내도

"아, 전 그거 너무 안 좋아해서."란 말로

철벽을 치곤 했던 나의 극혐리스트.

그러고 보니 근래 그 리스트에서 빠져나온 건 

가지만은 아니었다.


물컹거리고 밋밋하던 이유로

가지를 싫어했던 것처럼


숨차고 재미없단 이유로

운동을 멀리했지만

어느 날 유튜브보고 따라해본

줌바 댄스는 내가 알던 그 운동이 아니었다.


색깔 안 이쁘고 너무 되직하단 이유로

카레를 꺼려했지만

어느 날 일본 가서 먹어본 

새우 넣어 맵게 만든 카레는

내가 알던 그 카레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게 많아야 성공한 삶이라고

나와 남에게 누누히 말하곤 했다. 


그 '좋아하는 것'의 스펙트럼을 좁게 했던 것이

이 '싫어하는 것'의 리스트였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인정한다. 

그 리스트는 너무 대충 쓰여졌다.

내가 그간 먹어본 건 

고작 간장양념한 가지조림 뿐이었고

내가 그간 해본 건 

헬스장에서 뛰는 5km/h 러닝머신 뿐이었으며

내가 그간 먹어본 건 

엄마가 밥하기 싫을 때 해 준 

3분 카레였을 뿐인데 말이다.



좁은 편견도 넓은 취향도 대물림된다


취향의 너비는 대물림된다.

난 늘 먹던 것만 먹고, 하던 것만 한다. 

엄마를 닮았다. 

내 남편은 기왕 먹을 거 새로운 걸 먹는다. 

안해본 걸 먼저 한다. 시어머니를 닮았다.

(물론 남편은 많은 경우 

새롭게 도전한 신메뉴에 배신당하고 

내가 시킨 인기메뉴를 넘본다.)


내가 좇아온 무난하고 안온한 삶과

남편의 새롭고 극적인 삶. 

어느 삶이 낫다 말할 순 없다. 


다만 내 아이들에게 '도전하며 살거라' 하려거든

가지든 카레든 운동이든

'난 그거 싫어. 안해.'라며

철벽 치는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설령 조금 꺼려진다 하더라도

그거, 사실은 아직 모를 문제다.

아직 가지가지 해보지 않았을테니까.


가지치즈구이를 먹어보기 전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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