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04. 아몬드 초콜렛
괜시리 눈길이 가는 동화책이 있다.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같이.
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와 자주 도서관에 간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책을 고르고,
난 제목이 끌리는 책을 집어든다.
오늘, 유독 이 책에 끌렸다.
<When Sophie Gets Angry - Really, Really Angry>
한국에선 <소피가 화나면, 정말 정말 화나면>
이란 이름으로 번역된 책이다.
며칠 전 저녁 식사를 떠올렸다.
5살 첫째가 갑자기 숟가락을 놓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가지구이를 우물우물 먹던 중이었다.
아이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키며 말했다.
"너무너무 짜증이 나요. 막 던져버리고 싶어요.
동생이 태어나고부터 계속 화가 나요."
독차지 하던 사랑을
반 넘게 뺐기고도 괜찮을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5살인데.
책의 바코드를 기계에 찍으며
오늘 밤 이 책을 읽자고 아이와 약속했다.
소피는 너무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달렸다.
소피는 내 딸처럼 화가 나 있었다.
동생과 장난감을 가지고 다퉜다.
소피는 세상을 부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소피는 달렸다.
더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달려라 하니가 떠올랐다.
어딘가에 다다라 소피는 운다.
새소리도 듣고
나무도 타고
산들바람을 느끼며 바다를 내려다본다.
소피는 이제 괜찮다.
내게도 아이에게도
괜찮지 않은 날은 늘 있었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엄마 품에 안겨 잠든
둘째의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갑자기 언니가 된 아이는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갑자기 엄마가 되었던 5년 전의 나처럼.
책장을 덮으며 불현듯 지난 5년을 머릿속에서 훑었다.
벅찬 기쁨도 숱했지만
숨이 막힐 때도 있었다.
가장 힘든 건 '내 삶에 대한 갈증'이었다.
밤과 낮의 구분없이 아이를 돌본다.
아이는 엄마의 사정, 엄마의 피로를 알지 못한다.
나를 꾸미고 내 일을 하고
내 친구를 만나 즐기던 내 삶이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아이의 삶이 되었다.
목 늘어난 수유티를 입고
푸석한 머리는 아무렇게나 묶은 채
요일도 시간도 잊고 살다보면
9% 남은 아이폰 배터리마냥
내 삶에 빨간불이 켜지곤 했다.
하지만 사막의 오아시스마냥
내 하루는 앵꼬 직전에 충전되곤 했다.
밤9시. 아이가 다시 깨서
젖을 찾을 자정까지의 3시간.
아이가 잠이 든다.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온다.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연다.
냉장고 문 두번째 줄에서
아몬드 초콜렛 블럭을 집어든다.
선반에서 손바닥 크기의 접시를 꺼낸다.
4조각, 손가락 3개 크기만큼의
아몬드 초콜렛을 쪼개서 담는다.
소파 가장 왼쪽 자리에 가 앉는다.
책을 읽거나 블로그 이웃들의 피드를 훑는다.
아몬드 초콜렛을 토독, 베어문다.
가능한 천천히 가능한 오래도록 입 속에서 녹인다.
냉장고 문 두번째 칸, 아몬드 초콜렛 4조각.
나의 육아는 이 녀석 덕을 많이 봤다.
늘 방전의 위기는 있었다.
늘 충전의 간식도 있었고.
그러고 보면 내 삶은 늘 방전의 위기를 겪어왔다.
초딩 땐 또래 친구가 없어 슬펐다.
그 슬픔은 하교길 문방구에서 쥐포로 풀었다.
고딩 땐 별보기 운동이 지겨웠다.
야자 마치고 버스 정류장 앞에서
닭꼬치 사먹을 생각에 그래도 견딜만 했다.
대딩 땐 연애사가 괴로웠다.
그럴 땐 감자탕과 쏘맥이 있었다.
직딩 땐 나의 무능력이 발목을 잡았다.
그럴 때면 회사 앞 스벅에 가서 기계처럼 읊었다.
바닐라 더블삿 시럽 두번만 넣어
톨컵에 얼음이랑 같이 주세요, 라고.
아무래도 괜찮지 않은 날,
친구에겐 눈치보이고
가족에겐 보이기 버거운
그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던 달달한 녀석들.
뭐든 던져버리고 싶다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럴 땐 어떻게 하냐고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가 입을 연다.
“모르겠어. 엄마가 가르쳐줘.”
“사실 엄마도 막 화가 나고 슬플 때가 있어.
그럴 땐 있지. 엄만 맛있는 걸 먹어.
아몬드 초콜렛같은.
우리 딸도 화가 나고 그럴 때
맛있는 걸 조금 먹어보는거야. 어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딸, 뭐 먹고싶어?
엄마가 해줄게.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