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07. LA갈비
갈비를 먹는 자는 둘로 나뉜다.
LA갈비는 언제나 옳다.
양념에 키위 갈아넣고 3일을 재운다.
오븐에서 호일깔고 20분 쯤 굽고
마무리는 팬에서 지글지글.
가위로 성큼성큼 뼈와 살코기를 분리해서
김치 한 접시와 함께 식탁에 낸다.
모두의 젓가락이 바빠진다.
이 때 갈비를 먹는 유형은 둘로 나뉜다.
뼈를 뜯는 자와 살코기를 씹는 자.
난 전자다.
오돌뼈, 닭똥집같은 '오도독'한 식감을 좋아하는 내게
약간의 살코기가 붙어 있는 갈비뼈는 그야말로 노다지.
이로 뼈와 살코기가 연결된 그 부분을 정확히 끊어
뼈를 쏙, 빼서 빈그릇에 채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딱 한 곳,
시댁에선 갈비를 뜯지 않는다.
신혼 초 시댁 식구들을 초대했다.
밥솥이 칙칙폭폭 열심히 밥을 하고 있던 그 때.
시댁 어른이 뭘 하나 들고 내게 오셨다.
어제 해놓은 밥을 덜어놓은 그릇이었다.
그리곤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 이것부터 먹어치워야지."
멈칫했다.
'나더러 저 찬밥 먹으란 건가?'
그 순간 뇌가 오래된 기억을 소환해냈다.
어린 시절 명절 풍경이었다.
커다란 상에 놓인 크고 잘생긴 음식들,
그 옆 작은 상 위에 차려진 자잘하고 못난 음식들.
어느 상에 앉느냐를 결정하는 건
결코 선착순이나 랜덤,
혹은 부엌에서의 노동강도가 아니란 걸
사춘기 때 알았다.
그렇게 난 오랫동안 작은상에서 명절을 지냈다.
시댁 어른의 '찬밥' 이야기가 섬뜩했던 건
그 시절 쌓인 나의 상처를 건드린 까닭이다.
그 후로 시댁에선 갈비뼈를 뜯지 않는다.
아무리 오도독 소리가 맴돌아도 들지 않았다.
저걸 든다는 건, 꼭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전 그냥 남은 거 먹어없애죠뭐."
자격지심은 말을 고깝게 듣게 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알았다.
"얘, 이것부터 먹어치워야지."란
시댁 어른의 말씀을
"얘, 이 찬밥은 니가 먹어라."로
해석한 건 '나'였다.
더 엄밀히 '나의 자격지심'이 그랬다.
여자라 대우받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그 말씀을 고깝게 들었고
그 탓에 그 맛난 갈비뼈도 몇 년을 못 뜯었다.
찬밥 계속 두면 버리게 되니
새밥에 섞어먹든 데워먹든
지금 먹고 치우자, 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어도 되었을 것을.
분유먹여? 딸이야? 얼굴좋네?
이 말들이 고깝게 들린다면
어제 저녁, 잘근잘근 갈비뼈를 씹으며
그간 고깝게 들렸던 몇몇 말들을 생각해봤다.
혹 거기에도 내 자격지심이 있었던 걸까.
“분유먹여?”
뭐야, 모유 안 먹인다고 뭐라 하는거야?
"애가 엄마 안 찾아?"
뭐야, 애엄마가 일하러 나왔다고 독하단거야?
“둘째도 딸이야?”
뭐야, 아들타령하려고?
”얼굴 좋네”
뭐야, 살쪘단거야?
"지난달 어떤 프로젝트했지?"
뭐야, 나 성과 안 좋다고
일부러 걸고 넘어지는거야?
하나같이 가슴에 콕콕 박혔던,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저 안부를 물었을 뿐인 말들.
상처받는 삶은 너무 피곤하다.
결국 잘 돌려듣거나, 안 돌려듣거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너무 피곤하단 것.
한 번 말이 고깝게 들려 사이가 서먹해지면
그 다음 말은 더 곱씹게 된다.
그리곤 바지 무릎에 난 구멍마냥 걷잡을 수 없어진다.
방법은 두 가지다.
1. 상대의 숨겨진 의중을 100% 캐치해낸다.
2. 상대에게 숨겨진 의중은 없다고 전제한다.
단, 1은 타고나야 하는데 단언컨대 난 아니다.
결론은 2다. 그냥 해석하지 않는 것.
곧이곧대로 듣는 것.
예를 들면 이렇게.
얼굴 좋네? =
와! 내 얼굴이 보기좋은가봐.
어젯밤 마스크팩이 잘 맞나보네.
둘째도 딸이야? =
우리 애한테 관심가져주네.
역시 자상한 사람 :)
지난달 프로젝트는? =
내 업무가 궁금한 모양이네.
나 회사에서 이렇게 존재감있는 사람!
어쩌면 그 때 그 분은
내게 찬밥을 먹으란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야기든 고깝게 들린단 건
자격지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단, 그걸 건드린 건
상대방의 무례함일 가능성도 크다.
문제는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의 삶이란 것.
그 때 나의 시어른은
내가 찬밥을 먹어치우길 바라셨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례하셨다.
하지만 내가 그분의 삶과 생각을
극적으로 바꿔놓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삶이다.
하여 나의 최선은그 말에 상처받지 않는 것.
당신의 말에 내 맘을 찌를 생각같은 건
애초에 없다고 당신을 믿어버리는 것.
갈비뼈에서 부드러운 살코기만 잘라내어
접시에 담으며 내린 오늘의 결론,
“당신의 말에 뼈 같은 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