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Mar 16. 2019

어머니는 고등어가 좋다고 하셨어

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09. 고등어구이

우리 집 베스트셀러

고등어구이


우리 집 식탁에서 절대

음식물 쓰레기로 남겨지지 않는

몇몇 메뉴가 있다.


들기름에 구운 두부조림

소금 후추 간해서 구운 닭봉 구이

치즈 올려 구운 가지구이

파인애플 소스 곁들인 차돌박이 샐러드

그리고

에어프라이어로 바삭하게 구운

고등어구이.



치킨에 닭다리

고등어엔 까만 살


적당히 노릇노릇하게 구운 고등어를

슥슥 발라 다섯 살 첫째의 밥공기에 놓아주곤 한다.

첫째가 가장 기다리는 건 바로 고등어의 ‘까만 살’.

가장 담백하면서 고소한 바로 그 부분이다.



이거 먹으면 머리도 좋아진다고

할머니들이 그러셨다며

아이는 까만 살을 바르는

내 젓가락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문제는 요 까만 살이 한 마리에

고작 네다섯 입 나온다는 것.

그리고 사실은 나도 요 부분에 환장한다는 것.

내가 지금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까만 살 찹찹 발라 날 먹이셨다.

그때부터 쭈욱 난 ’ 까만 살 킬러’였다.



할머니는 조기 대갈빼기만 

잔뜩 쌓아놓고 드셨다.


생선을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는 조기 대갈빼기를 좋아하셨다.

아가미를 사이에 두고 젓가락에 힘을 주면

조기의 대갈빼기에

약간의 살점이 붙어 똑 떨어진다.

할머니는 조기를 먹을 때마다  

이 부분만 모아 산처럼 쌓아놓고 드셨다.

언젠가부터 조기를 구우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대갈빼기 접시를 만들어 드렸다.

당연하게 그랬다.


정말, 어두육미라서였을까.



딸이 운다.

엄마가 자기 까만 살을 먹었다며.


아이에게 까만 살을 발라주다

한 점 내 입에도 넣었다.



내 젓가락만 쳐다보던

딸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내려간다.


“내꺼 왜 먹어 엉엉엉”

“엄마도 이 부분 좋아해.”

“이건 내꺼란 말이야!”


딸의 울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건강하게 자라 다오

원하는 걸 아는 사람으로 커다오


아이가 맛난 것 즐겁게 먹으며

건강하게 크길 바란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자신이 원하는 걸 명확히 알고 표현하며

이를 성취하려 노력하는 이로 살길 바란다.

엄마가 되어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건강한 식습관을 가르치려면

엄마가 먼저

브로콜리 얌냠 당근 얌남 먹는 걸

보여줘야 하는 것처럼


아이가 원하는 게 분명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엄마가 먼저 ‘엄마가 원하는 건 이런 거야.’

보여주며 거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난 고등어 까만 살을 내 숟가락에 얹었다.

그리고 아주 맛나게 먹었다.


“엄마도 고등어 까만 살 엄청 좋아해.

엄마 한 입, 딸 한 입 이렇게 먹자.”


까만 살이 온전히 자기 차지가 아니란

사실에 딸은 상당히 슬퍼했다.

하지만 이 시간이 쌓이고 쌓여

내 딸이  원하는 걸 아는 사람,

원하는 걸 또렷하게 말할 줄 아는 엄마로

살게 될 거라 믿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할머니가 원하셨던 건 뭐였을까,

찐하고 고소한 조기 대갈빼기의 맛?

쑥쑥 커가는 자식들의 모습?


둘 다라면, 참말로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아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