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Mar 16. 2019

남과 달라도 괜찮은 나라 뉴질랜드

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10. 플러피

딸이 커피잔을 홀짝이던 그때,

소식을 들었다. 총기난사였다.


다섯 살 첫째는 카페 가는 걸 즐긴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늘 마시던 것’을 주문한다. 플러피다. 아이들을 위한 가짜 커피.



우유 거품을 따뜻한 우유와 함께 커피잔에 담아준다. 약간의 초코 가루와 마시멜로가 곁들여진다. 제법 근사한 라테처럼 보인다. 아이를 위해 서빙되는 이 커피잔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이 나라에선 노키즈존을 본 적이 없구나 그러고 보니.


카페에 앉아 있노라면 다양한 에피소드를 목격하게 된다. 며칠 전엔 주문받는 곳이 약간 시끄러웠다. 줄이 꽤 길었고 그 줄의 맨 앞에선 30대 남자가 주문을 하고 있었다.


“캔. 캔. 캔. 캔. 캔...”


그는 “캔” 한 글자를 무척 큰 소리로 반복하고 있었다. 틱이었다. 커피를 세 모금, 네 모금 홀짝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가 드디어 “캔아이겟라테 플리즈”란 문장을 완성했다. 안도의 숨을 내쉰 그때, 그곳에서 긴장하고 있던 건 오로지 나였단 걸 깨달았다. 주문을 받던 직원도 기다리던 다른 손님들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냥 직원은 손님의 주문을 받았고 손님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 ‘민폐’, ‘불편’ 같은 단어는 좀처럼 끼어들 틈이 없었다.


플러피를 홀짝이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곳 뉴질랜드는 남과 좀 달라도 괜찮은 곳이구나, 나이든 장애든.’ 하고 생각하던 바로 그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뉴스 봤어?”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모스크에서 기도하던 무슬림 4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온 나라가 슬픔과 충격이 사로잡혔다. 호주인 용의자는 이민자로 인해 백인들이 설 땅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범행했다.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로서 가슴 아프고, 두렵다. 내가 그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어서 두려운 것만은 아니다. 정말 두려운 건 성적 지향, 나이, 성, 종교, 인종. 이 모든 다양성을 품기 위해 노력해온 뉴질랜드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



뉴질랜드는 나와 다르단 이유로

누군가를 배척하는 것을 배척한다.


뉴질랜드는 성적 지향성이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것을 배척한다. 번화가의 횡단보도를 성적 지향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로 칠하는 것이 이곳에선 아무렇지도 않다.



뉴질랜드는 피부색과 뿌리가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것을 배척한다. 애초에 마오리들이 살던 곳이다. 백인들이 이 땅을 발견하며 갈등을 겪었으나 그 갈등을 치유하려 지금도 부단히 노력 중이다. 인종차별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이는 크게 지탄받는다.


“너 지금 인종차별주의자처럼 굴고 있어.”


이 한마디는 체포영장만큼이나 이 땅에서 힘이 세다. 나와 다르단 이유로 혐오하고 차별해선 안된다고 어려서부터 배운 까닭이다.


남편이 일하는 회사엔 LGBT 커뮤니티가 공개적으로 운영된다. 사보엔 이들의 정기모임 일정도 실린다. 남과 다르다고 해서 자신을 부정할 필요는 없단 것도 같이 배워온 까닭이다.



남과 달라도 괜찮은 나라 뉴질랜드.

이 평평하고 보드라운 땅에

날 선 미움이 싹트질 않길 바란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