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Mar 18. 2019

글과 걷기와 탕목욕, 그리고 자몽

모든 끼니는 훌륭하다 11. 자몽

자몽을 좋아합니다


자몽을 처음 맛 본 건 10년 전.

덴마크 다이어트가 한창 유행할 때였다.

소고기, 식빵, 삶은 계란, 커피, 

자몽 등으로만 짜인 식단이었다.


2주 간의 덴마크 다이어트가 내게 남긴 건

리셋되는데 채 열흘도 걸리지 않은

1.5kg의 감량 효과만은 아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과일이 있다니. 

뭐? 그런데 살도 빠져?'


자몽의 발견이었다.


자몽은 대중적인 과일은 아니다.

과즙도 풍부하고 때깔도 곱지만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씁쓸하고 시다.

하지만 내가 반한 것도 그 포인트였다. 

쌉싸레하게 터지는 과즙미. 



게다가 자몽은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아니- 마이너스 칼로리다.

본디 지닌 칼로리도 100g당 30kcal로 적거니와

소화하는데 드는 칼로리가 높아

결론적으로 먹을수록 살이 빠진다나. 


그렇게 난 10년째 자몽을 먹으며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중이다. 



초콜릿과는 전혀 다른 행복


세상엔 참 많은 행복이 있지만

대개 하나를 선택하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초콜릿. 

그 달콤 쌉싸래한 매력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지만

그 칼로리도 치명적이다. 

100g에 550kcal. 

자몽의 18배다. 세상에. 


대가를 치러야 하는 행복은 

그 외에도 수두룩하다. 

쇼핑을 실컷 하면 통장을 포기해야 하고

여행을 한 번 댕겨오면 

다음 달 결제액에 0이 하나 더 붙는다. 

게임 몇 판 때리면 죄책감을 얻는다.


초콜릿, 쇼핑, 여행 그리고 게임. 

다른 행복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조금 슬픈 행복들.


다른 뭔가를 걱정하고 

포기할 필요없는 자몽이, 

난 매일 아침 반갑다.



글과 걷기, 탕목욕 그리고 자몽


그러고 보면 난 자몽이 많다.


글쓰기도 나의 자몽이다. 

혼자로도 충분히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취미이자

그걸로 밥벌이 비스무리하게 하고 있다.

쓸수록 행복하다. 마냥.


걷기도 나의 자몽이다.

두런두런 사람 구경 세상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

걷는 사이 탄탄해지는 몸과 건강은 덤이다. 

걸을수록 행복하다. 마냥.


탕목욕도 나의 자몽이다.

몸에 붙은 먼지와 때를 말끔히 씻어내며

뜨거운 물속에서 더없는 평화를 누린다.

할 때마다 행복하다. 마냥.

(요즘 향 좋은 배스 쏠트로 그 재미가 배가됐다.

저녁엔 장범준의 신보를 틀어놓을 생각이다.)



글과 걷기, 탕목욕.

내 삶을 가볍게, 하지만 묵직하게 해온

내 인생의 자몽들.


궁금해진다. 

올 봄엔, 올 여름엔

또 어떤 자몽을 맞닥뜨리게 될까.

작가의 이전글 남과 달라도 괜찮은 나라 뉴질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