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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Dec 25. 2015

딸. 함무니가 그렇게 좋으냐!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33

육아휴직이 끝났다.

할머니로 선수가 교체됐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껌딱지처럼 붙어다니던 꿀같은 몇 달이 일단락됐다. 한국에 머문 한 달 남짓, 친정 엄마가 육아 바톤을 이어받았다. 복직 후 몇 주는 참 정신없었다. 밀린 진도 따라잡는 심정으로 새벽별보며 첫 차를 탔다. 일하는 재미, 사람들과 부대끼는 활기가 점점 속도를 냈다. 집에서 외할머니와 소꼽장난하고 있을 아이 생각이 하루에도 골백번씩 났지만, 워낙 할머니를 잘 따르는 녀석이라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전혀 뜻밖의 고민이 터졌다. 내 사춘기 여드름처럼.



나랑 낄낄댔던 시간은 홀랑 까먹고

아이는 함무니 바보가 됐다.


아이의 적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서둘러 퇴근해서 달려온 엄마를 거들떠도 안보다니. 두 팔 벌려 달려온다던지, 작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던지 하는 장면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날이 갈수록 '함무니' 발음이 정확해져갔다. '엄마' 소리는 치즈 한 장을 제공해야만 간신히 나왔다. 맙소사.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 대사를 21개월짜리에게 쓰게 될 줄이야.)


이렇게나 다정했던 딸이 변했다.

내가 널 이렇게 키웠는데!

엄마 힘들지 말라고 온집안 청소는 다 해주던 딸이 변했다.

엄마를 이렇게나 위해주던 니가!


서운함이

죄책감으로 번졌다.


이 녀석. 그래도 내가 엄만데. 엄만 묻고 따질 것도 없이 1등인거 아니었나. 


함무니만 찾는 딸을 보며 깔깔대며 재밌어 하던 것도 잠시. 이내 서운해졌다. 좀 더 정확히 난 삐져버렸다. 제일 친한 친구가 다른 짝꿍을 만들어버린 기분이었다. 이 유치한 기분에서 끝났다면 좋았으련만, 서운함은 죄책감으로 번졌다.


내 사랑이 부족했나.


심각해졌다. 완벽하길 바란적은 없지만 아이도 나도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열심히 살았건만. 내 사랑이 부족했던 건가. 그래서 아이가 날 찾지 않는걸까. 답답함이 꼬리를 물었다. 오랜만에 빠져보는 생각의 늪이었다. 얼마나 빠져 있었을까. 문득 아주 오래된 기억에 까지 닿았다.



늘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주시지 않아서 더 그랬다.


기억의 주인공은 20년을 함께 살았던, 2년 전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가장 큰 자랑은 아들 삼형제였다. 명절 때면 그시절 어른들이 대개 그러하셨듯 아들 손자를 병풍처럼 끼고 수저를 드셨다. 난 그 옆 작은 상에서 주눅든채 밥을 삼키곤 했다. 할머니의 아들 타령이 이어질 수록 다음 명절이 오지 않았으면, 바랐다. 오랜 시간 그 사랑 한줌 얻어보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가족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 기억은 꽤 아팠다.



그래서 바랐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길


올해 봄 아이의 첫 생일, 우린 한가지씩 바람을 적어 남겼다. (매년 아이의 생일마다 한 장씩 남겨줄 참이다.) 사랑많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라 적었다. 간절한 진심이었다.



그래. 내가 가장 바라는 건 아이가 사랑많은 사람으로 자라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 아이는 할머니에게 지극하게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이에게 내가 1번이 아니라 한들 내 사랑이 쪼그라들 리 없다.


이렇게 넘치게 받은 사랑은 아이가 살며 나누고 베풀 사랑의 씨앗이 될거다. 고기는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잘 하는 거니까.


그렇다면 문제될 게 뭐람. 아이는 봄볕 해바라기 마냥 넘치게 사랑받으며 부쩍부쩍 자라고 있는데.


이렇게 생각의 늪에서 빠져 나왔다. 내가 왜 서운했었는지 가물가물 해진 채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 했다.


내 아이의 할머니에게 감사한다.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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