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32
"이거 뭐야? 샀어?"
"마트 판촉물이네. 저번엔 피규어 주더니만. 이번엔 뭐야? 뜯어봐."
냉장고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포장을 뜯었다. 종이를 뜯어 이리 저리 끼우니 까만 선글라스를 쓴 크리스마스 소년이 나타났다. 그제야 벽에 걸린 달력을 물끄러미 넘겨다봤다. 오마나, 크리스마스가 코 앞이었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다. 노는 게 일이었던 학창시절 명절이 특별했을까 주말인들 기다려졌을까. 관심에 선물 얹어 받는 내 생일도 좋았지만 사실 크리스마스만 못했다. 뜨끈한 장판과 두툼한 이불 사이에 쏙 들어가 귤 까먹기 좋은 날. 따뜻한 코코아와 커피 한 잔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추위마저 사랑스러워졌다. 동네 오빠와의 유치한 로맨스를 꿈꾸며 자체 이불킥을 날리던 그 시절의 크리스마스.
그 날을 늘 함께 했던 크마고우 캐빈도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절대반지를 낀 프로도에게 편성을 빼앗겼다지만 그 시절 우리의 그날 밤은 영원히 이 녀석의 차지다.
무튼. 그렇게 특별했던 그 날을 잊고 있었다. 아마도 흰 눈이 예고해주지 않아서, 하얀 입김 너머 캐롤이 울려퍼지지 않아서 인가보다. 여긴 한여름의 뉴질랜드니까.
이 곳은 여름이다. 난 당신과 같은 달력을 넘기며 다른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 곳의 크리스마스는 뜨겁게 더울게다. 무려 2주짜리 크리스마스 홀리데이를 보내며 사람들은 비키니를 입고 해변을 누비겠지. 선명한 볕 아래 삼삼오오 모여 마당에서 바베큐를 구울 거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그 날을 맞이하는 풍경도 사뭇 다르다. 굴뚝을 타고 들어가느라 물구나무를 선 산타 할아버지, 퀵보드를 탄 루돌프, 턱시도를 차려입은 눈사람이 이웃의 마당에 가득하다. 지난 할로윈 때는 거미줄을 잔뜩 쳐놓았던 집이다. (참 부지런도 하다.)
사실 달라진 건 동네의 풍경만은 아니다.
연인 대신 2살짜리 딸의 선물을 포장했다. (산타 할아버지 손을 거치겠으나) 포장지를 두른 엄마의 첫 선물이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20년 만이다.
딸아이가 내년부터 다니게 될 어린이집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았다. 8천원 이내 선물을 가지고 오면 산타 할아버지(를 가장한 아르바이트생)가 전해준단다. 포장지에 싸서 주는 엄마의 첫 선물은 선글라스다. 마침 딸 내외와 함께 연말을 보내려 와 계신 부모님과는 함께 여행을 간다. 댓발 나온 입을 하고 다녔던 사춘기 시절 마지막 가족 여행 이후 20년 쯤 되었나.
따뜻하게 설렌다. 캐빈과 흰 눈이 없어도 좋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 따위- 없어도 그만이다. 전기장판에 드러누워 귤 까먹던 내게 두꺼운 솜이불을 내어다 덮어준 건 우리 엄마였다. 귤을 박스 채 쟁여놓고 식탁 위 바구니를 화수분처럼 채웠던 것도 엄마였다. 추운 겨울 따뜻한 뭐라도 사 먹으라며 엄마 몰래 용돈을 찔러준 건 아빠였다. 제아무리 캐빈이 귀여웠어도 혼자 <나홀로 집에>를 봤다면 그렇게 가열차게 낄낄댈 수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그날 밤, 동네 문방구에서 산 공작세트를 양말에 넣어 잠든 척한 내 머리맡에 놓고 나가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여즉 선명하다.
그 시절 그 날의 추억엔 항상 풍경처럼 가족이 있었다. 가족은- 내 평생의 크리스마스다.
딸. 서른 몇 살에 맞이하는 어느 크리스마스 날, 엄마가 선물해준 선글라스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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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