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
온통 장밋빛이었다.
오랜 연애 끝에 누구하나 토 달지 않는 결혼을 했다. 달콤한 신혼의 어느 날 자꾸 달력에 눈이 갔다. 선명한 두 줄이 정확히 이렇게 말했다. “오, ㅊㅋㅊㅋ” 소식을 들은 남편은 싱크대 뒤에 숨었다. 이내 일어선 그의 눈에 (아주 살짝) 맺힌 눈물에 제법 만족스러웠다. 남편은 경상도 남자니까.
뱃속 아기는 그야말로 효녀였다. 그 흔한 입덧도 하지 않아 신새벽 딸기타령을 해볼 기회를 앗아간 게 그나마의 불효였달까. 둥글둥글 움직이는 아이는 나를 마냥 행복하게만 했다.
하지만 그 진부한 표현마따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날 새벽, 난 친정에 있었다. 소변을 보는 꿈을 꾸곤 잠에서 깼다. 꿈은 꿈이 아니었고 소변은 소변이 아니었다. 동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아직 사태 파악 전의 나를 눕혀 둔 채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아침 7시. 나를 태운 엠뷸런스가 막 러시아워가 시작된 8차선 도로를 역주행했다.
그렇게 아이는 달력을 두 장이나 가로질러 내게 왔다.
내겐 나름의 ‘시나리오’가 있었다.
- 결전의 그 날. 남편 머리를 잡아 뜯으며 몇 시간이고 진통을 한다.
- 마침내 들린 ‘응애’ 소리에 뜨거운 눈물 한 줄기를 흘린다.
- “엄마, 고마워.”라며 친정엄마를 보며 한 번 더 운다.
- 아이를 품에 안고 첫 모유를 먹인다. (이 때, 남편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 아이를 폭 싸서 품에 안고 “잘 키워야지!” 다부진 결심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모조리 실패했다.
- 양수가 터져 아이가 위험해졌다. 긴급 수술을 해야 했다.
- 아이는 ‘응애’ 소리 한 번 내고는 숨을 쉬지 못했다. 난 마취기운에 그것도 모르고 누워 있었다.
- 엄마는 신생아 중환자실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계셨다.
- 모유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무리한 유축에 하얀 모유 대신 붉은 피만 흘러 나왔다.
- 아이는 열흘 동안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다.
나의 장밋빛 일상은 가시밭길로 들어섰다.
몸보다, 마음이 그랬다. 피곤하고 아픈 건 얼마든지 OK. 나를 잠 못 들게 한 건 2시간마다 깨는 아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실패한 엄마’가 되었다는 자괴감이었다.
사람들의 말은 아팠다.
“모유는 잘 먹어? 젖 넘치고 그러면 되게 아프다던데.”
(안 나와. 하루에 4시간씩 유축하는데 안 나와.)
“아... 수술했어? 좀 아쉽겠다-“
(양수가 없어서 애가 위험했대.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냐.)
“사람이 사람 젖을 먹어야지 소젖 먹으면 쓰니?”
(그러게요 .....근데 아줌마는 우유 잘 드시던 것 같은데 ...)
괄호 안의 말을 직접 내뱉진 못했다. 자격지심 같은 게 의식에 팽배해있었기 때문이다. 사는 내내 모범생이었던 나는 누군가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다.
습관처럼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를 보며 말했지만 사실 남편, 가족, 세상 모두에게 미안했던 거다. 이런 엄마밖에 되지 못해서.
다음 글 #2. 그래, 엄마에겐 ‘곤조’가 있어야 한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