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8
십 수 년 전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한 달 급식비가 6만원 정도 했었는데, 한 반에 2명 씩 집안 사정이 어려운 친구들은 급식비를 내지 않고 먹었다. 대신 점심 시간마다 배식이나 식기 정리를 맡아했다. 급식업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했으니 돈 대신 노동력을 급식비로 낸 셈이다. 공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음식이 모자라거나 반찬이 맛이 없을 때면 화살이 그 2명에게 돌아갔다.
"쟤네가 공짜로 먹는 바람에 반찬 부족한 거 아냐?"
"쟤네가 공짜로 먹는 바람에 음식 재료를 싼 걸 쓴 것 같은데?"
이런 식이었다. 두 친구는 배식대 반찬이 바닥을 보일 즈음부터 괜히 눈치를 봤다. 위축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우리 반 30명 모두 배불리 먹을 권리가 있었다. 잘못은 매일 28명이 먹을 양만 준비해놓은 급식업체에 있었다.
십 년도 훨씬 지난 그 때 일을 떠올리게 한 건 전업주부 어린이집 보육 시간 제한에 대한 기사였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누리고 있는 보육혜택에 차등을 둔다는 이야기였다. 내년 7월부터 전업맘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은 하루 6시간으로 제한된다. 구직 준비나 기타 사정이 있으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내라고 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목소리가 오버랩되는 것 같았다.
"급식비 낼 형편 안되는 사람은 서류 떼서 교무실로 와."
몇몇 친구들이 쭈뼛대며 그 뒤를 따라갔던 기억을 곱씹으며 기사를 마저 읽었다. 정책이 변경되는 이유는 예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애초에 전국민 무상보육을 내걸고 대통령이 되셨으나 상황에 맞게 정책은 수정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탓을 대놓고 전업맘들의 무책임한 양육 태도로 돌렸다는 거다.
장관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애를 맡긴다"며 편을 갈랐다. 애초에 무상보육의 취지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선거 때 목놓아 부르짖었던 전국민 무상보육이 '얼른 애 맡기고 일 나가세요.' 일하는 국민만을 위한 제도였나. 저출산과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내가 이해했던 무상보육의 취지는 '어떤 사정을 가진 누구든 걱정없이 아이를 키우라'는 거였다. 예전에 온 마을이 나서 아이를 키운 것처럼 이젠 나라가 아이들을 보듬고 부모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으로 알았다. 내가 오해한 게 아니라면 예산 문제에 직면하고 나서야 말을 바꾸며 그 잘못을 전업맘에게 돌리는 것은 참 비겁하다. 100명에겐 100명의 상황이 있다. 전업과 워킹 두 가지 상황으로 50명 씩 편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의 다수는 전업맘에 대한 비아냥이었다.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일찌감치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힐난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었다.
"지자식 맡겨놓고 카페나 가서
팔자좋게 놀려드는 게으른 것들"
여기, 비슷한 논리가 있다.
To. 아이 맡기고 출근하는 워킹맘
"자기 커리어 챙기느라
지새끼 떼어놓고 출근하는 독한 년"
To. 아이 낳을 생각이 없는 딩크족
"지들 편하게 살려 부모한테
손주 안아보는 재미도 뺐는 이기적인 것들"
우리 사회는 비아냥에 중독되어 있다. 굳이 비아냥대야 한다면 옆 라인 전업맘이 아닌 파란 지붕 그 분의 변덕이 그 대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전업맘'과 '워킹맘'이라는 단어부터 우린 의심해봐야 한다. 이 단어엔 '양육은 엄마의 몫'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나는 아이는 '같이' 키우는 거라고 믿고 싶은 1인이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