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4
아이가 크며 점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늘어났다. 방이 점점 창고가 되어가는 통에 하나 둘 물건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녀석부터 내놓았는데 1등은 단연 침대였다. 중고 거래가 활발한 나라인지라 다행히 금방 팔렸다.
그런데 불똥은 엉뚱한 곳에서 튀었다. 전화로 소소한 일상을 전하다 침대를 팔았단 이야기를 하자 양가 어른들이 정색하고 나서신 것.
"그걸 왜 팔어. 둘째가 써야지."
아차 싶었다. 어른들은 둘째를 옵션이 아닌 필수로 생각하신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의 둘째를 간절히 기다리는 건 양가 어른들만은 아닌 모양이다. 이따금 소식을 주고 받는 친구는 얼마 전 셋째를 낳았다. 복작복작 다섯 식구가 사는 모양이 참 이뻤다. 그런데 그 친구가 셋째 사진을 보내다 말고 한 마디 보탠다.
"둘째는 언제쯤? 얼른 낳아.
난 다시 태어나도 셋이야.
너 나중에 후회한다~"
장난스런 이모티콘도 잔뜩 붙었건만, 내겐 위협적으로 들렸다.
가장 큰 종용자는 딸이다. 동생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딸이 자기보다 작은 생명체를 좋아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놀이방에 가서도 내내 인형을 보듬고 끌고 다닌다. 유모차에 태워 마실이라도 나갈 참이다.
"애가 하도 동생 낳아달라 졸라서 가진거야.
그거 아니면 마흔 넘어 미쳤다고 낳겠니."
작년에 늦둥이를 낳은 사촌 언니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릴 적 오빠와 놀았던 기억이 많다. 고민이 깊어진다.
아이를 낳은 후 줄곧 고민했다. 내 생애 또 다른 아이가 있어야 할 것인지. 아이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순간순간 또 다른 아이가 있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잠든 딸 옆에 더 작은 아이 하나가
함께 잠들어 있다면 어떨까?"
"딸이 입다 작아진 옷 입히면
옷값도 안 들텐데 말야."
"할머니한테 세배하고 세뱃돈 받으려
둘이 줄 서 있으면 너무 웃길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둘째 생각이 없다.
처음엔 다시 임신과 출산, 육아를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컸다. 그러다 아이가 조금 커서 육아에 익숙해지자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둘째가 생긴다면 다시 몇 년을 다시 넣어둬야 할 그런 일들. 어쩌면 영원히 때를 놓쳐버리게 될 일들.
나의 결론은 이랬다.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어.
아이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구.
하지만 그걸 이유로 둘째를 낳지는 않을래."
부모님을 기쁘게 할 방법은 많다. 더 자주 얼굴 보이고, 더 자주 소식 전할테다. 우리가 행복한 것이 그분들에겐 기쁨이다. 아이가 외롭지 않게 도울 방법도 적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를 만들테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부모의 모습 자체가 아이에겐 좋은 교과서가 되어 줄 거라 믿는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날 그 순간부터 내가 다른 것에 집중할 방법은 없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인 거다. 하여, 온전히 내 선택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핑계삼지 않더라도 충분히 간절히 원하게 될 때- 그 때 다시 생각해볼 작정이다.
곧 추석이다. 아이 문제로 어른들께 듣게 될 이야기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는 분들께 감히 화이팅을 외친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