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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Sep 01. 2015

워킹맘의 육아휴직 손익계산서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9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은 직장 여성에겐 보통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예 휴직할 엄두도 못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여러 가지 이유’엔 임신과 출산을 앞둔 이들의 귀에 끊임없이 들려오는 등골 오싹한 이야기들도 한몫한다.


'육아휴직 다녀오면 받아주는 부서가 없다던데? (그럴만도 하지)’

'요즘 누가 1년 다 쉴 간 큰 생각을 하겠어. (설마 너?)’

'옆 부서 김 대리는 출산휴가도 1달만 쓰고 왔다던데? (대단해)’

'일 안하고 애보면 마이너스 통장 써야 된다더라구. (남편만 불쌍하지)’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에 등장하고 지인들이 제보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육아휴직은 언감생심 내가 누릴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레 겁부터 먹게 되는 거다. 그렇게 휴직 저 너머의 삶을 깊이 고민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직장에 복귀한다. 


모두에겐 모두의 사정이 있는 바-

A. ‘현실이 그러니까 그냥 포기해.'

B. '그래도 권리니까 무조건 사용해’ 


A와 B 모두 정답은 아니다. 다만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 1년의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 스스로 가늠해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게 육아휴직 손익계산서를 꼼꼼히 두드려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1년 동안 잃을 수(도) 있는 5가지



#1. 직장

최악의 경우 직장을 잃을 수 있다. 물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일어나는 일이다. 15개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2개월)의 공백을 용인하지 않는 일부 회사에선 흔히 이런 제안을 한다(고 한다.) 


"출산휴가까진 해줄테니까 그냥 계속 육아에 전념하는 게 어때. 

어차피 육아휴직 기간동안 돈은 나라에서 주는 거니 그거 다 받을 때까지 회사에 이름은 올려놓고."


사실상 출산과 동시에 직장을 잃게 되는 셈이다. 아이있는 유부녀의 재취업이 몹시 어렵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육아휴직 사용을 포기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된다.



#2. 직장 내 입지와 커리어

이 경우는 조금 낫다고 이야기해야 하나. 무사히 (?) 복귀한다 해도 난항이 예상된다. 길게는 1년까지 자리를 비우는 사이 많은 것이 변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죄다 까먹었고 후배는 몰라보게 성장했으며 트렌드는 모조리 바뀌어 있을 것이다. 


#3. 통장 잔고

육아휴직 기간엔  나라에서 돈을 준다. 월급의 40%, 최대 월 100만원이 지급된다. 월급날 통장에 다박다박 300만원이 꽂혀왔던 직장인이라면 한 달에 200만원 씩 덜 받게 되는 셈이다. 1년 휴직이라면 2400만원. 차 한 대 값이다. 보통 이 시기엔 집 때문에 은행돈을 빌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 숫자다. 육아휴직을 빌미로 커리어가 끊기게 될 경우 보다 장기적인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같이 벌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는 점도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다.


#4. 직장인의 활력

노동의 고됨과는 별개로 직장인들의 활력이 있다. 이를테면 출근용 라떼와 함께 하는 아침, 점심 메뉴 고민하는 오전 나절, 퇴근 후 치맥이 주는 저녁의 즐거움. 뿐만 아니다. 상사의 칭찬 한 마디에서 밀려오는 성취감도 삶에 생기를 부여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자부심 역시 삶에 큰 활력이 된다.


#5. 아이라인과 하이힐

또각또각 하이힐과 프로페셔널한 옷차림, 생기가 도는 메이크업. 이는 직장여성의 아침 나절을 정신없게 하는 주범인 동시에 하루를 설레게 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다면 새로운 화장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보통 화장품의 유통기한은 2년인데, 육아휴직이 끝날 15개월 후부터 아무리 열심히 사용해도 기한 안에 다 쓰진 못할 것이기 때문. 그만큼 한껏 꾸미고 외출할 일도, 자신의 외모에 투자할 시간도 줄어들게 된다.




당신이 1년 동안 얻을 수(도) 있는 5가지





#1. 아이와 보내는 많은 시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일 듯 싶다. 결코 다시 오지 않을 시간, 아이와의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시간, 아이의 모든 '처음'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을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무려 1년이나 내가 내 아이의 우주같은 존재가 된다는데.


#2. 오로지 엄마로 살아온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이해

대개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딸과 엄마의 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된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전히 나만 바라보는 아이의 눈동자를 오래 바라볼 수록 나를 이렇게 키웠을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오랜 시간 'ㅇㅇ 엄마'로 불리는 삶을 살았다. 1년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엄마의 아이덴티티는 나의 엄마였다. 오롯이 엄마로 살게 되는 휴직 기간, 그런 엄마의 삶이 더욱 고맙고 크게 느껴진다. 


#3. 잠시 멈춰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한국은 너무 숨가쁘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하기 위해 숨가쁘게 내달려야 한다. 사회인이 된 후론 무언의 경쟁이, 서른 즈음엔 결혼과 임신에 대한 압박이 정신없이 몰아친다. 끊임없이 이겨야 하고 증명해야 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맞이하는 육아는 신세계다. 미션은 오로지 아이의 의식주를 챙기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 뿐. 쉴 틈은 없으나 고요한 일상이다. 아이 이유식 만들며 아이 재우며 아이 유모차 끌며 진득히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4. 내 엄마의 편안한 노후

딸 가진 엄마는 손주 기저귀에 깔려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참 아프게 들린다. 딸이 사회생활을 포기하는 것을 원치않는 엄마는 딸의 아이를 맡아 길러주마 하신다. 그렇게 시작된 조부모 육아는 마땅히 여유롭고 자유로워야 할 내 엄마의 황혼을 지치게 한다.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부담을 나의 엄마에게 안기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일게다. 


#5. 인간적인 성장

"육아 maketh 사람." 

육아는 깊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내가 아닌 아이를 중심으로 세계가 돈다. 오늘은 0월 0일이기 이전에 생후 000일로 기억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내 식사는 늘 아이밥 다음이다.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돌 전후엔 바닥에 드러누우며 부리는 떼에 엄마 몸에서 사리가 나올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혀짧은 소리로 '엄마'하며 그렁그렁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엄마의 기분은 다시 롤러코스터를 탄다.


단 며칠, 몇 개월이라도 한 아이의 삶을 온전히 이끄는 경험은 분명 사람을 변화시킨다. 육아휴직을 하게 되며


나는 점점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점점 가족이 더없이 소중하단 걸 깨닫는다.

나는 점점 아이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점점 더 나은 세상을 기도하게 된다.


이걸 다 합하면- 철이 든다는 표현이 적합하지 싶다. 




p.s.


나는 지금 육아휴직 중이다. 

이 시간이 마무리될 즈음 나의 실제 육아휴직 손익계산서엔 모쪼록 양수(+)가 찍혀 있길.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1.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feat. 엉망 엄마

#2. 그래, 엄마에겐 ‘곤조’가 있어야 한다.

#3.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걸까?

#4. 육아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

#7. 육아에 훈수를 금합니다.

#8.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한 Tip 5가지

#9. 워킹맘의 육아휴직 손익계산서

#10. 딸. '잘' 살 필요없어.

#11. 딸. 엄마를 필요로 해줘서 고마워.

#12. 딸. 엄마랑 사진찍자, 100장 찍자.

#13. 딸. 엄마랑 커플룩입어볼까?

#14. 딸. 엄마가 우리 딸 맘을 몰랐네.

#15. 딸. 아빠는 도와주는 게 아냐.

#16. 딸. 맘충이라고 들어봤니.

#17. 딸.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말야.

#18. 딸. 문제는 전업맘일까?

#19.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 만들기

#20. 딸.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냐.

#21.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22.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23. 딸. 엄마가 바라는 추석은 말야.

#24. 딸. 외동이면 외로울까? 

#2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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