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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Sep 09. 2015

딸. 엄마가 우리 딸 맘을 몰랐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4

잠을 자려하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하루 2시간. 아이의 낮잠 시간은 엄마에겐 '꿀'이다. 간혹 아이가 그 시간을 어기기라도 할 때면 초조해진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일을 시키는 상사를 대하는 심정이 된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원래 자던 때를 1시간이나 넘겼는데 도통 잠들려 하지 않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징징 대는 통에 머리가 아팠다. 쉬고 싶었다.



아이와의 씨름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난 몇 번 쯤 못 본 척 돌아누워도 보고 얕게 화도 냈다. 


"ㅇㅇ이 안 자면 엄마 힘들어."


아이의 울먹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잠든 아이의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이는 오늘 왜 이렇게 힘들게 잠들었을까. 잠든 아이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보며 문득 아주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5살 꼬마의 마음을 엄마는 몰랐다.

그래서 운 게 아니었는데.


내가 5살 무렵이었으니 서른 해 가까이 지난 일이다. 유치원에서 공원으로 소풍을 갔었다. 엄마와 아이가 짝을 지어 풍선을 가지고 달리는 게임을 했었던 모양이다. 나는 참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한 아이가 나보다 빨랐고, 저만치 앞서 달려가 자기 엄마에게 안겼다. 바로 그 순간 내가 안고 있던 풍선이 터졌다. 나는 펑- 소리보다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달려와 나를 안아들었다.


"풍선이 터져서 놀랐구나. 

괜찮아. 엄마가 더 이쁜 거 불어줄게."


엄마가 틀렸다. 엄마는 내 마음을 몰랐다. 풍선이 터져서 운 게 아니라 친구보다 빨리 달리지 못해서 나는 울었다. 그 작은 아이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있다는 걸 엄마는 몰랐다. 



사춘기 시절 방문을 쾅- 닫으며 생각했다.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사춘기를 유난스럽게도 겪었다. 이마에 난 커다란 여드름처럼 잔뜩 성이 나 있었다. 한 번 씩 그 여드름이 터지듯 마음 속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방문을 부러 세게 닫았다. 내가 화났다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와. 아까 상 치웠는데"

(쾅)

"지가 늦게 와놓고 어디서 성질이야!"


엄마는 화를 냈다. 알지도 못하면서. 난 밥상을 치웠다고 화를 낸 게 아니었다. 엄마가 마냥 슬프고 외로운 나를 위로해주지 않아서 속상했던 거다. 문을 세게 닫은 건 위로를 청하는 내 나름의 신호였는데 엄만 그걸 몰랐다. 그 시절 참 많이 뇌까리곤 했다.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딸의 마음을 멋대로 넘겨짚은 건 아닐까


잠든 아이의 눈가에 아직도 눈물이 고여 있다. 얼마나 서러웠길래. 아이가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잠꼬대를 했다. 


엄마미... (나 자기 싫어서 안 잔 거 아냐)

엄마미... (나도 다 이유가 있어)

엄마미... (엄만 알지도 못하면서)


내 딸도 그렇게 옹알거리는 것 같았다. 꼬맹이 시절의 나처럼. 



아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엄마가 몰라서


아이가 어른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아이의 말을 몰랐다. 울먹울먹거리며 '엄마. 내가 괜찮지 않아'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난 '칭얼댄다'고 받아들였다. 아이가 어리고 철이 없어서 엄마의 휴식을 방해한 게 아니다. 엄마가 몰라서 아이의 사연을 읽어내지 못한 거다. 아이에겐 분명 이유가 있었을텐데. 


문득 어릴 적 내용도 모르고 신나게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갖고싶어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장난감만 사주면 그만인가요 예쁜옷만 입혀주면 그만인가요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건데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알약이랑 물약이 소용있나요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그래, 어른들은 몰랐어. 엄마도 몰랐어. 



물론, 아이와의 씨름은 계속 될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아이와의 씨름이 계속될 걸 안다. 오늘처럼 드러눕고 떼 쓰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분명 화가 날 것 같다. 하지만 그 땐 마주보고 이렇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우리 딸 마음을 잘 모르겠어. 

딸 마음을 잘 알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무조건 다그치고 보는 엄마는 하기 싫다. 이 시간이 쌓이고 쌓여 사춘기가 온대도 '엄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이야기는 덜 듣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친구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면 참 좋겠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1.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feat. 엉망 엄마

#2. 그래, 엄마에겐 ‘곤조’가 있어야 한다.

#3.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걸까?

#4. 육아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

#7. 육아에 훈수를 금합니다.

#8.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한 Tip 5가지

#9. 워킹맘의 육아휴직 손익계산서

#10. 딸. '잘' 살 필요없어.

#11. 딸. 엄마를 필요로 해줘서 고마워.

#12. 딸. 엄마랑 사진찍자, 100장 찍자.

#13. 딸. 엄마랑 커플룩입어볼까?

#14. 딸. 엄마가 우리 딸 맘을 몰랐네.

#15. 딸. 아빠는 도와주는 게 아냐.

#16. 딸. 맘충이라고 들어봤니.

#17. 딸.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말야.

#18. 딸. 문제는 전업맘일까?

#19.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 만들기

#20. 딸.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냐.

#21.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22.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23. 딸. 엄마가 바라는 추석은 말야.

#24. 딸. 외동이면 외로울까? 

#2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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