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0
주말에 지인들과 모였다. 스무 명 가까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화제는 단연 최연소 참가자인 내 딸이었다. 음악에 맞춰 아주 잠깐 엉덩이를 씰-룩하니 모두 뒤집어졌다. 고기를 낼름낼름 받아먹는 걸 보며 다들 눈에 하트가 넘실댄다.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모두가 딸을 주목했다. 아이는 매우 익숙하게 이 무릎 저 무릎으로 옮겨 다니며 놀았다.
어릴 때 우린 이렇게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
하지만 그 사랑에 점점 조건이 붙는다.
"어머 우리 딸 받아쓰기 100점 받았네! 이뻐!"
"어쩜 그렇게 눈이 크고 이쁠까?"
"이야~ 방정리 잘했구나! 착해!"
초콜렛을 먹어본 아이는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한다. 사랑받는 건 초콜렛보다 100배 더 달다. 그래서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이성에게, 친구에게 사랑받으려 본능적으로 노력한다. 쉬운 말로 눈치를 보는 거다. 뭘 해야 저 사람의 사랑을 받을지. 나도 그랬다.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싶어 컨닝을 했고
친구의 마음에 들고 싶어 급식비로 선물을 샀다.
하지만 그 노력이 항상 빛을 본 건 아니었다. 되려 성공 확률은 점점 낮아졌다. 어느 순간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 아예 나에게 관심이 없는 이들은 그 몇 배라는 것도 깨달았다.
미움 혹은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건 무척 괴로웠다. 누군가와 갈등을 겪을 때면 몇 번이고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저 사람은 왜 나를 미워하지?
아.... 그 때 내 행동이 싫었던 건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그 마음에 들어 보려 노력하는 것 뿐이었다. 내가 상대에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그랬다. 그냥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나'보다 '상대'를 기준으로 행동했던 그 시절은 참 행복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를 서점 책꽂이에서 빼든 수많은 이들이 마음이 나와 같지 않았을까. 사는 내내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전전긍긍했던 거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 김연아에게도 안티가 있다. 하나님도 적이 있다. 18개월짜리 딸이 지금 받고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 역시 평생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친구와 싸웠다며, 선생님이 나만 미워한다며 울고 들어올 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넌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건 아니야.
누군가는 널 미워할테고
그보다 많은 이들이 너에게 관심이 없을거야.
근데 괜찮아.
니 잘못이 아니야.
딸.
누군가 너를 사랑하게 만들 순 없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건 니가 할 수 있어.
우리- 할 수 있는 걸 해보자."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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