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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Aug 28. 2015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한 Tip 5가지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8

요 며칠 기분이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남편은 걱정스러운 듯 이유를 물었다. 표현이 민망해서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내 마음이 변비에 걸린 것 같아."


육아에 매진하면서부터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정말 열심히 산다.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본 적이 여지껏 없다. 하루종일 바삐 행군하는 느낌. 하지만 내 인생은 꽉 막혀 있는 느낌이다. 먹이고 놀고 재우고 밥하는- 무엇하나 변하지 않고 딱 고대로인 하루를 몇 달 살다 보면 (변비의 주요 원인인 장무력증 마냥) 내 삶에 탄력이 사라진다. (화장실 못 가 몸이 무거워지면 만사 귀찮아지는 것마냥) 축 늘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하지만 이거 참 병원가서 '변비는 변빈데 그걸 제 마음이 걸린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엔 내 정신이 너무 멀쩡하다. 일단 나 스스로 헤쳐나가보는 수 밖에. 고심 끝에 몇 가지 노력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1. 페이스북 눈팅은 그만. 블로그를 시작한다.



WHY?

엄지손가락으로 주욱 주욱 훑어내리는 SNS상의 '남 이야기'는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한다. 사실 남들 보는 데에 내 불행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나. 행복한 순간만 꾸욱 눌러담아 올려놓기 마련인데, 그런 타임라인을 구경하다보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사시사철 24시간 내내 행복만 가득하다고 오해하게 된다. '남'말고 '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WHAT?

한 장의 사진이나 짧은 글로 포장하는 대신 좀 더 긴 호흡으로 '나'의 진솔한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블로그를 시작해보자.


HOW?

1일 1포스팅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야말로 '이상'이다. 각자의 상황에 맞는 나름의 목표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1주일에 1개 포스팅이라던지 특별한 이벤트 (생일, 여행 같은)는 반드시 포스팅- 이라던지.


IF?

단기적 효과 :::   남의 삶 구경하는 대신 나의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크다.

장기적 효과 :::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아이와 엄마의 '최초'가 기록된다. 걷고, 뛰고, 보는 수많은 아이의 '최초'와 그걸 바라보는 엄마의 수많은 '최초'에 어찌 값을 매길 수 있을까. 사진으론 담을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기록은 훗날 가족의 위대한 자산이 될 터.




2. 쳇바퀴 일상은 그만. 일요일 저녁엔 다음 주 목표를 세운다.  


WHY?

육아가 우울해지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일상이 반복된다는 점에 있다. 눈 뜨면 밥해서 먹이고 씻기고 책읽고 먹이고 재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든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인 궤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WHAT?

일주일의 감정 그래프를 그려보자. 홀로 육아가 시작되기 직전, <개그콘서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일요일 저녁에 곡선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 다음 주의 펜이든 폰이든 꺼내 계획과 목표를 세워보는 거다. '기다려지는' 일을 만들기 위해.


HOW?

일요일 오후 9시. 펜과 종이, 달력을 꺼내든다. 다음 주의 이벤트를 살펴보고 그에 맞는 목표를 세워본다. 이를테면 다음 주엔 보고 싶던 영화가 개봉한다. 어떤 영화관에선가 아이와 엄마가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특별관을 운영한다고 하니 거기에 한 번 도전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거다. 굳이 거창할 필욘 없을 것 같다. 여러 개여도 좋을 듯. 상상에 돈 안 드니까.


IF?

목적이 있는 삶은 활기차다. 기다려지는 게 있단 건 멋진 일이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약간의 리듬과 크레센도를 줄 수 있다. 덧붙이자면 '엄마'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삶에도 긍정적이다. 집중 육아 기간이 끝난 다음의 삶과 커리어를 천천히 계획해볼 수도 있으니까.




3. 자책은 그만. 아이 재우면서 엄마칭찬타임을 갖는다.


WHY?

엄마들이 제일 많이 하는 게 밥 다음으로 자책이다. 애가 넘어져도 자책, 애가 채소를 안 먹어도 자책, 애를 혼낸 후에도 자책. 자책은 주눅을 부르고 주눅의 다음 단계는 우울 아닌가. 사실 애 하나 키우는 건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일인데. 그런 위대한 일에 자책이라니.


WHAT?

대신 칭찬을 해보기로 했다. 24시간을 붙어 살았는데 엄마로서 잘한 것 하나 없을까.

'애가 잠투정하다 돌려차기로 내 얼굴을 가격했지만 화내지 않았으니 아주 훌륭해. 이렇게 인자한 캐릭터였어?'

'귀차니즘 극복하고 애랑 놀이터 갔다온 거 훌륭해. 덕분에 살도 좀 빠지지 않았겠어? 70g 쯤?'


HOW?

아이가 잠에 빠져드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하다. 보통 30분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거리다 잠들곤 하는데 그 시간이 사실 부모에겐 고역이다. 내 경우 하도 읽어서 외우게 된 동화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는 게 보통. 하지만 10번 쯤 반복하면 읊어대는 사람도 지루해진다. 이 시간에 대신 '엄마칭찬타임'을 갖는거다. 여기서 '엄마'는 물론 '나'다. (남편과 함께 아이를 재우는 경우엔 더욱 재미있을 듯)

"ㅇㅇ야. 아까 ㅇㅇ이가 엄마 얼굴로 돌려차기를 날렸는데 엄마 화 안 낸 거 알지? 엄마 대단해!"

"ㅇㅇ야. 너 애낳고 엄마만큼 비쥬얼 훌륭한 게 쉬운게 아냐. 엄마 이쁘지?"

혼자 칭찬하고 혼자 웃다보면 아이는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남편은 킥킥 대느라 정신없을테고.)


IF?

육아는 칭찬이 인색한 업종이다. 해도해도 티 안 나는 건 살림이나 매한가지인데 지켜보는 이도 없으니 칭찬해달라 정수리부터 들이밀 대상도 없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건 그래서 필요한 게 아닐까.




4. 아이 옷은 그만. 나를 위한 하이힐을 지른다.


WHY?

애엄마에 대한 대표적 편견 중 하나는 '푸석한 얼굴에 질끈 묶은 머리'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 역시 시간적, 경제적 여력을 아이에게 집중하게 된다. 내 옷 보던 걸 아이 옷 보게 되고, 나 화장할 시간에 아이 이유식을 만들게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마음이 크다. '꾸미고 갈 데도 없는데 뭐. 꾸민들 누구한테 잘 보이겄어.' 하지만 엄마도 여자다, 예쁘고 싶은. 실제로 아이의 돌잔치는 결혼식에 이은 '엄마'의 축제다. 이 날을 디데이 삼아 열심히 외모를 가꾸는 경우가 대부분. 내 말은, 그 디데이를 에브리데이 삼아 보자는 거다.


WHAT?

사실 여자들에겐 각자 주력하는 뷰티 영역이 있다. 친구 A는 유독 날씬한 몸매에 큰 의미를 둔다. B는 매끈한 피부 관리에 과감하게 투자한다. C는 애나멜 구두를 살 때마다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했다. 그 무엇이 됐든 '스스로 가장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나의 모습'을 위해 투자하는거다. (내 경우엔 옷이었다.)


HOW?

당당하게 가계부에 '내옷' 항목을 정기적으로 넣는다. 목표 종목(?)의 가격대에 따라 한 달, 혹은 몇 달의 구매 계획을 세운다. 쉽게 말해 셀프 곗돈. 포인트는 '당당하게'와 '정기적으로'다.


IF?

대충 이런 형태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꾸민다 > 밖에 나간다 > 활력이 생긴다 > 기분이 좋아진다 > 이뻐진다 > 기분이 더 좋아진다 > 아이에게, 가족에게 더욱 충실할 수 있다.




5. 울리지 않는 카톡은 그만. 묵묵히 들어주는 화분을 키운다.


WHY?

육아는 고립을 동반한다. 몸이 묶이기에 흔히 지인과의 연락에 집착하게 되는데, 많은 경우 '공연히 오지 않는 카톡'에 맘 상하곤 한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지만, 그래도 조금 덜 외로울 수 있는 건 언제 어디서든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다.


WHAT?

'걱정인형'을 기억하는지. 이 인형은 과테말라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오는 Worry Dolls에서 착안한 것이라 한다. (더보기) "걱정일랑 내게 맡겨. 그리고 너는 잠이나 자.' 이런 의미라고 하는데 어지간한 카톡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굳이 인형일 필욘없다. 사춘기 시절 나의 가장 좋은 벗은 우리 집 푸들이었다. 집에 그런 something을 하나 만드는 것. '화분'은 이에 제법 적절한 아이템이다. 살아있고 나를 필요로 하고 말이 없으며 이쁘기까지 하니까.  


HOW?

- 맘에 드는 화분을 산다. (난 히아신스를 샀다.)

- 볕이 잘 들고 평소 내 시선이 자주 머무는 곳에 둔다. (싱크대 위쪽 선반에 뒀다.)

- 아침에 1번, 저녁에 한 번 물을 주며 안부를 묻고 내 신상도 이야기한다. (스스로 미친 사람처럼 여기지 않는 당당함이 포인트다.)


IF?

일단 친구들에게 안 삐지게 된다. 원래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의지하다보면 그만큼 서운한 것도 많아지니까.

더불어 지인들의 공감 여부에 따라 기분이 휩쓸릴 염려도 덜 수 있다. (내 이야기가 공감받지 못하고 파도처럼 휩쓸린 모래 마냥 흔적조차 사라지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그리고 하나 더, 꽃이 집 안에 있으면 볼터치를 한 것마냥 생기가 돈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1.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feat. 엉망 엄마

#2. 그래, 엄마에겐 ‘곤조’가 있어야 한다.

#3.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걸까?

#4. 육아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

#7. 육아에 훈수를 금합니다.

#8.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한 Tip 5가지

#9. 워킹맘의 육아휴직 손익계산서

#10. 딸. '잘' 살 필요없어.

#11. 딸. 엄마를 필요로 해줘서 고마워.

#12. 딸. 엄마랑 사진찍자, 100장 찍자.

#13. 딸. 엄마랑 커플룩입어볼까?

#14. 딸. 엄마가 우리 딸 맘을 몰랐네.

#15. 딸. 아빠는 도와주는 게 아냐.

#16. 딸. 맘충이라고 들어봤니.

#17. 딸.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말야.

#18. 딸. 문제는 전업맘일까?

#19.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 만들기

#20. 딸.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냐.

#21.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22.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23. 딸. 엄마가 바라는 추석은 말야.

#24. 딸. 외동이면 외로울까? 

#2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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