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1
먼훗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가슴을 치긴 싫었다. 대신 "내가 그때 너랑 얼마나 재밌었는데" 하며 깔깔대고 싶었다. 엄마도 아이도 둘 다 행복한 일들을 해보기로 한 건 그 때문이었다. <둘다 리스트>란 이름을 붙이고 10개를 적어 내려갔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망설이며 썼던 항목은 '친구 사귀기'였다. 자신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친구를 사귀는 게 가장 어려웠다. 게다가 이 곳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이었다. 조리원에 가지 않아 카톡으로 수다 떨만한 조리원 동기도 없었다. 동네에도 카톡에도 육아 친구가 없어 답답할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친구를 만들어야 겠단 생각을 한 건 아이 때문이었다.
한 번은 아이와 식당에 갔다. 아이가 한동안 조용하다 싶어 쳐다보니 옆 테이블 어떤 여자분과 열심히 아이컨텍 중이었다. 꺄르르 웃고 헤벌쭉 웃었다. 그 집에 따라 가기라도 할 기세였다. 그 분이 물었다.
"집에서만 키우세요?
사람 참 좋아하네. 밖에 데리고 다녀요-"
그 날 이후 난 참 부지런해졌다.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동네 아기 놀이방에 갔더니 딸과 비슷한 또래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와 같이 이번엔 동네 놀이터에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만난 친구를 도서관 소파에서 또 만났다. 그렇게 친구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처음 며칠은 주위에 또래가 있든 없든 다를 바 없이 굴던 딸이 달라졌다. 장난감 자동차를 서로 타겠다고 다투기도 하고 처음 보는 아이들의 얼굴을 무턱대고 만지기도 했다. 블럭을 가지고 놀다 옆에 앉은 아이에게 건네주는 장면은 살짝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친구들과 놀고 들어온 날엔 입에 밥을 물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가자며 나를 잡아 끌었다.
나도 좋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 친구의 엄마는 내 친구가 됐다. 몇 개월인지, 잘 걷는지, 밥은 잘 먹는지를 물으며 묘한 동지의식을 느꼈다. 사실 우린 만나는 그 순간 이미 '육아'라는 공통된 경험을 들고 있었다. 친구가 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이로 시작해 아이로 끝나던 나의 일상에 설레는 일들이 생겼다.
아이의 첫 생일날, 우린 돌잡이를 하지 않았다. 돈이든 연필이든 마우스든- 부모가 골라 올려놓은 미래를 선택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게 가장 컸다. 공부를 잘하길 바라지 않는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도 내 바람이 아니다. 스스로의 바람대로 살길 바라며 아이의 이름에 '바랄 원'자도 넣었다. 하지만 한 가지 바라건대 밥 먹고 물 마시듯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이로 자랐으면- 싶다. 그래서 사는 내내 덜 외롭다면 좋겠다.
자,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둘다 리스트> 두번째 미션 성공 :)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