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
엄마로서의 열등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 정점은 ‘모유’였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모유를 먹이라 충고했다. (심지어 결혼도 안 한 친구도.) 윽박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다른 엄마들 사는 모양을 넘겨 보면 속은 더 쓰렸다. 난 한 방울도 감지덕지인 모유가 남들은 (박근혜가 논두렁에 대고 뿌렸던 소방호스 물줄기마냥) 펑펑 터졌다. 너무 많이 돌아 비누를 만들어 쓰는 사람도 있단 이야기를 듣곤 기가 찼다.
젖동냥을 나선 고아 마냥 여기저기 문을 두드렸다. 한 시간에 10만원짜리 마사지도 아깝지 않았다. 하루에 4시간 씩 유축기를 달고 산 게 네 달이 넘는다. 어두운 방에서 아이를 재우고 영혼없이 유축기를 더듬더듬 찾던 어느 순간 알았다.
“아, 이게 산후우울증이구나.”
이별에 맞닥뜨린 여자가 그러하듯 친구들에게 물어대기 시작했다.
“그냥 분유 먹어도 괜찮겠지? 요즘 어련히 잘 나오겠어.”
이별의 충격에 청승맞아진 친구에게 그러하듯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뭐... 모유 먹이면 제일 좋긴 하지.”
내가 원한 답이 아니었다. 이별한 여자가 원하는 답은 이걸거다.
“야. 안그래도 니가 너무 아까웠어. 헤어지라고 할라 그랬다야.”
내가 원한 답은 이거였다.
“당연하지~ 모유 좀 안 먹인다고 큰일 안 나~”
내게 괜찮다고 말해준 건 되려 소설 속 한 문장이었다.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고
외롭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더냐
자기 인생은 자기 혼자서 갈 뿐이다.
남이 가르쳐주는 건 그 사람이 겪은 과거일 뿐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은 혼자서 겪어 나아가야 하는 나의 미래다.
- 조정래 [정글만리] -
엄마가 된 지 6개월. 조용히 유축기 상자를 침대 밑으로 밀어넣었다.
태어나 20대까지 ‘타인의 생각’은 상당히 중요했다. 어느 대학에 가야 좋다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이랑 결혼해야 좋다고들 했다. 엄마로서 느끼는 열등감의 뿌리는, 나의 삶이 아주 오랜시간 기대어 살았던 ‘타인의 생각’이었다. 이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 이전의 ‘사람’으로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올곧게 밀어 부칠 수 있는 ‘나의 생각’, ‘곤조’가 있어야 했다. 모유를 줄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다.
삶을 몇 개로 나눌 수 있다면 이 순간은 그 경계 중 하나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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