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5
아이와의 시간을 후회없이 즐기기 위해 엄마도 아이도 행복한 <둘다 리스트> 10개를 적었다. 10개 중 서너 개는 중간에 바뀌었다. 그 중 하나가 <춤>이었다. 애초에 리스트를 적을 땐 생각치도 못했던 항목이었다. 춤은 나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수련회는 내게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이유 중 하나가 '춤'이었다. 수련회 마지막날 강당에 모여 광란의 댄스 타임을 갖는 것이 그 시절 수련회의 패턴이었다. 그리고 한 해의 예외없이 레크레이션 강사의 레퍼토리는 똑같았다.
"각 반 반장 나와 춤~추세요!"
권력(!)에 눈이 멀어 썼던 감투를 그 순간이면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친구들이 등 떠밀어 올라간 무대가 천길 낭떠러지처럼 보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춤을 못 췄다. 뇌엔 분명 춤을 추란 명령어가 입력되었건만 내 팔다리는 그냥 허우적댈 뿐이었다. 저- 멀리 우리반 애들이 배꼽 잡고 부끄러워 하는 장면이 불보듯 뻔했다. 부끄러웠다.
그런 기분은 대학에 가서도, 회사에 들어가서도 이어졌다. 축제나 엠티, 새터 같이 춤이 빠질 수 없는 모임은 항상 있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이쯤 되면 누군가 춤판을 벌이겠다' 싶어질 때 쯤 조용히 어둠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신나게 춤추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부러웠다.
하지만 춤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샤워하다 말고 "빠 빠빠빠빠 빠~"하면서 홍콩 영화에 나왔던 그 장면을 따라하곤 했다. 유행하는 걸그룹의 댄스 몇몇도 킥킥 대며 춰봤다.
싫었던 건 '춤'이 아니라 '남들 눈에 못 추는 춤'이었다. 그게 부끄러워 제대로 청춘을 즐기지 못한 거다.
그런 내가 변했다.
첫 아이인데다 외국에 나와 사는 처지라 집에 장난감이 몇 개 없었다. 덩그라니 놀이 매트 하나 깔려 있는 거실에서 아이를 웃게 할 장난감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 하나 밖에 없었다. 유튜브에서 아기 동요 메들리 틀어놓고 신나게 아이 앞에서 몸을 놀렸다. 안무는 없었다. 내 팔다리는 정말 자유롭고 신나게 허우적거렸다. 꺄르르 웃고 물개 박수까지 치는 아이를 보며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친구, 동료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은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1'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나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음악 비스무리한 게 들리면 벌떡 일어났다. 엉덩이를 씰룩씰룩, 양 발을 번갈아 내딛으며 스텝을 밟았다. 조금 지나자 그 작은 어깨와 팔로 웨이브를 넣는다. (물론 내 눈에만 웨이브로 보일 거란 것, 잘 안다.)
부엌에서 오븐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춤에 취한다. 놀이방 선생님이 템버린으로 박자 맞추는 것에 반응한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아이유와 박명수가 부른 <레옹>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댄스곡이다.
좋았다. 못 추는 춤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좋았다. 남에게 어찌 보일까 신경쓰지 않고 즐길 수 있어 좋았다. 딸과 내가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물개 박수를 쳐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신나게 춤을 추는 것처럼-
남들 보기 그럴듯 하지도, 멋지지도 않더라도
내 흥에 취해 웃고, 즐기며 살자."
아이는 쑥쑥 자랄 거다. 어느 순간 주위의 시선을 느끼고, 이에 신경이 쓰이는 때가 오겠지.
그래도 내게 '더 잘난 딸'이 되어 보이려 애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물개 박수치는 모녀로 쭉- 지내고 싶다.
자,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둘다 리스트> 네번째 미션 성공 :)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