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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Sep 28. 201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여행> 떠나기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6

여행은 <둘다 리스트>의

하이라이트였다. 


석 달 전, 엄마와 아이가 둘 다 행복한 <둘다 리스트>를 적었다. 10개의 리스트 가운데 가장 반짝반짝 빛났던 한 줄은 '여행 떠나기'였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란 단어는 참 힘이 세다. 그 두 글자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잠시 잊고 있었던 여행의 설렘을 오랜만에 느꼈다. 집 떠나면 개고생, 애 데리고 떠나면 더 고생이라지만 이미 내 마음은 캐리어를 열어 젖힌지 오래였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일단 짐부터 다르다.



아이와의 여행은 나홀로 여행보다

6배 쯤 스릴 있었다. 


운좋게 여행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왔다. 매번 룰루랄라 떠난 여행이었지만, 꼭 한 두 번 씩 사색이 될 일이 생겼다. 어린 아이는 변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하다. 





시드니에서는

'쪽쪽이 분실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고역이다. 내가 힘들어서는 아니다. 제어되지 않는 아이의 울음이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시드니 여행길, 비행 시간이 하필 아이의 잠투정이 절정에 이르는 딱 그 때였다. 민폐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이가 잘 때 무는 쪽쪽이를 3개나 준비한 것.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모두 다 잃어버렸다. 공항 셔틀에서 내릴 즈음, 마지막 남은 쪽쪽이 마저 오간데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이의 울음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기내를 상상하고 있었을 거다. 수 백 명의 승객에게 폐를 끼치게 될 생각에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을 이잡듯이 뒤졌다. 쪽쪽이를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비행 시간이 임박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차선책을 궁리하던 그 때, 멀리서 남편이 손을 흔들며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손엔 공항 가장 구석에 있던 약국에 단 하나 남아 있었다는 그 전설의 쪽쪽이가 들려 있었다. 그는 육아 리그 최고의 구원 투수였다. 세상의 모든 신을 향해 감사 기도를 올렸다. 


......

하지만 딸은 쪽쪽이를 물리기도 전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행히도...





LA에선 유모차 바퀴 3개가

모조리 주저앉았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맞닥뜨린 위기는 또 달랐다. 남편없이 아이와 단 둘이 1주일을 돌아다니는 일정이었다. 면허도, 차도 없는 탓에 1주일을 뚜벅이 일정으로 가득 채웠다. 걷는 것은 자신있었다. 밀기만 하면 굴러가는 튼튼한 유모차가 있으니 걱정 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 믿음의 유모차가 나를 배신했다. LA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 같이 3개의 바퀴가 죄다 주저앉아 있었던 것. 자전거 가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뚜벅이 일정을 시작했다. 


잘 굴러가지 않는 유모차를 억지로 미느라 손목이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주저앉은 바퀴가 만들어내는 소음이었다. 바닥과 바퀴가 격하게 인사를 하는 통에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아가씨 시절 구두굽이 마지막 1mm까지 닳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듣기 싫었고, 걷기 힘들었으며 무엇보다 눈치 보였다. 


이는 조용한 미술관에서 극에 달했다. 관람실은 아주 조용했다. 모두 숨을 죽인 채 모네와 램브란트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아주 조심스레 유모차를 밀었지만 소음을 피할 순 없었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쏘리쏘리를 나즈막히 읊조렸다. 정말 많은 이들이 괜찮다고 웃어주었다. 그들의 미소는 단언컨대 모자리나보다 아름다웠다.



아이만의

여행 컬렉션을 만들어주자.


여행을 하며 늘 그러했듯 그 도시의 그림을 샀다. 처음 나라 밖 여행을 떠났던 2005년 이후 10년 동안 이어져 온 나만의 컬렉션이었다. 되도록 손으로 그린 그림이 좋았다. 내 눈을 몹시도 사로잡았던 순간을 그렸다면 더할나위없었다. 그렇게 수십 장의 그림을 모았다. 두고두고 꺼내 볼 나만의 '여행 컬렉션'.




그런 컬렉션을 아이에게도 만들어주고 싶었다. 


시드니 컬렉션, 코알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내가 선택한 아이템은 '인형'. 앞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선 그 나라나 도시를 대표하는 인형을 하나씩 사 줄 생각이다. 그러다 아이 혼자 여행을 할 나이가 되면 그 땐 또 아이가 자기만의 컬렉션을 시작하겠지. 



TV도 스마트폰도 없이

오로지 가족 100%의 시간


우리 삶에 가족과의 시간이 몇 %나 될까. 대개 '저녁이 없는 삶'을 산다. 그 삶의 다른 이름은 '가족도 없는 삶'이다. 힘겨운 일상을 잊으려 우린 집에서도 TV 앞에 눕고, 스마트폰을 꺼내들기 때문이다.


Wifi도 케이블 tv도 없는 곳으로의 여행은 그래서 특별하다. 가족이 서로에게 100% 집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 습관처럼 만지작거리던 스마트폰 대신 아이의 손을 잡는다. 저녁 먹고 당연히 누워 보던 TV 대신 팔짱 끼고 산책하게 한다. 아이에게도 엄마 아빠를 독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차피 애는 기억도 못해."

"응. 그래도 괜찮아."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간다 하니 지인이 고생만 하고 아이는 기억도 못 할 거라며 핀잔을 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 워낙 어릴 때니까. 하지만 그 기억나지 않는 숱한 시간이 쌓여 아이 삶의 기반이 된다고 믿는다. 엄마, 아빠 사이에 끼여 마음껏 사랑받으며 누빈 그 기억은 아이의 무의식 어딘가에 열심히 저장되고 있을 거다. 




자,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여행 떠나기"

<둘다 리스트> 다섯 번째 미션 성공 :)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1.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feat. 엉망 엄마

#2. 그래, 엄마에겐 ‘곤조’가 있어야 한다.

#3.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걸까?

#4. 육아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

#7. 육아에 훈수를 금합니다.

#8.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한 Tip 5가지

#9. 워킹맘의 육아휴직 손익계산서

#10. 딸. '잘' 살 필요없어.

#11. 딸. 엄마를 필요로 해줘서 고마워.

#12. 딸. 엄마랑 사진찍자, 100장 찍자.

#13. 딸. 엄마랑 커플룩입어볼까?

#14. 딸. 엄마가 우리 딸 맘을 몰랐네.

#15. 딸. 아빠는 도와주는 게 아냐.

#16. 딸. 맘충이라고 들어봤니.

#17. 딸.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말야.

#18. 딸. 문제는 전업맘일까?

#19.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 만들기

#20. 딸.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냐.

#21.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22.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23. 딸. 엄마가 바라는 추석은 말야.

#24. 딸. 외동이면 외로울까? 

#2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26.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여행>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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