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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Sep 05. 2015

딸. '잘' 살 필요없어.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0



어제 한화는 또 졌다


패배에 쐐기를 박는 실점을 한 순간 리모콘을 던졌다. 화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팀이 내 기대만큼 이겨주지 않아서 뿔이 난 거다. 그 기분은 하루가 지난 오늘 오전까지 이어졌다. 반쯤 감긴 눈으로 이를 닦는데 어제 실점 장면이 떠올랐다. 차인표 마냥 분노의 칫솔질을 하던 찰나, 거울 속 잔뜩 찌푸린 내가 보였다. 


문득 겁이 났다. 혹 우리 아이에게도 이렇게 화가 나면 어쩌지.


아이가 자라 

중간고사에서 반 꼴찌를 하고

시험날 늦게 일어나 지각을 하고

상장 대신 벌점 스티커같은 걸 받아온다면


나의 기대와 기준에 못 미치는 딸에게 난 지금처럼 화를 내고 있을까. '왜 그것밖에 못해!'라며.



난 이른바 '상위권' 착한 딸이었다.


난 착한 딸이었다. 한국산 착한 아이의 절대적인 기준인 공부 영향이 컸다. 성적표 나오는 날은 정말 신났다. 얼른 학교 끝나고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싶어 교실 뒤 시계만 봤다. 하지만 살면서 늘 금요일일 수 있을까. 하나 둘 남보다 못하는 일이 생겼고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잦아졌다. 난 초조해졌다. 엄마가 잘나지 않은 딸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사는 내내 쫓아다녔다. 늘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눌려 살았다. 그 느낌을 아이가 겪게 하고 싶진 않았다. 



한화가 잘나서 응원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한화는 야구를 참 잘 못하는 팀이(었)다. 이기는 맛으로 볼 거면 삼성을 응원했어야 할터, 왜 난 '바보' 한화팬 대열에 합류했던 거지? 돌이켜보면 내가 반했던 건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야구를 했던 팀- 한화였다. 그 어떤 한화팬도 이기는 날만 응원하지 않았다. 그냥 한화를 응원했다. 


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딸의 삶을 응원할 작정이다. 


이기지 않아도 좋아. '잘' 살지 않아도 좋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을 즐기며 열심히 사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니가 원하는 삶을 살자. 엄마도 그럴게.


ps. 


한화엔 정현석이라는 선수가 있다. 1년 동안 암투병을 하고 얼마 전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는 복귀 첫 경기에서 수훈 선수로 뽑혔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그랬다. 


"아프고 나니 그동안 야구를 즐기면서 하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럽더라구요."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1.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feat. 엉망 엄마

#2. 그래, 엄마에겐 ‘곤조’가 있어야 한다.

#3.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걸까?

#4. 육아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

#7. 육아에 훈수를 금합니다.

#8.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한 Tip 5가지

#9. 워킹맘의 육아휴직 손익계산서

#10. 딸. '잘' 살 필요없어.

#11. 딸. 엄마를 필요로 해줘서 고마워.

#12. 딸. 엄마랑 사진찍자, 100장 찍자.

#13. 딸. 엄마랑 커플룩입어볼까?

#14. 딸. 엄마가 우리 딸 맘을 몰랐네.

#15. 딸. 아빠는 도와주는 게 아냐.

#16. 딸. 맘충이라고 들어봤니.

#17. 딸.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말야.

#18. 딸. 문제는 전업맘일까?

#19.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 만들기

#20. 딸.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냐.

#21.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22.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23. 딸. 엄마가 바라는 추석은 말야.

#24. 딸. 외동이면 외로울까? 

#2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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