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0
패배에 쐐기를 박는 실점을 한 순간 리모콘을 던졌다. 화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팀이 내 기대만큼 이겨주지 않아서 뿔이 난 거다. 그 기분은 하루가 지난 오늘 오전까지 이어졌다. 반쯤 감긴 눈으로 이를 닦는데 어제 실점 장면이 떠올랐다. 차인표 마냥 분노의 칫솔질을 하던 찰나, 거울 속 잔뜩 찌푸린 내가 보였다.
문득 겁이 났다. 혹 우리 아이에게도 이렇게 화가 나면 어쩌지.
아이가 자라
중간고사에서 반 꼴찌를 하고
시험날 늦게 일어나 지각을 하고
상장 대신 벌점 스티커같은 걸 받아온다면
나의 기대와 기준에 못 미치는 딸에게 난 지금처럼 화를 내고 있을까. '왜 그것밖에 못해!'라며.
난 착한 딸이었다. 한국산 착한 아이의 절대적인 기준인 공부 영향이 컸다. 성적표 나오는 날은 정말 신났다. 얼른 학교 끝나고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싶어 교실 뒤 시계만 봤다. 하지만 살면서 늘 금요일일 수 있을까. 하나 둘 남보다 못하는 일이 생겼고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잦아졌다. 난 초조해졌다. 엄마가 잘나지 않은 딸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사는 내내 쫓아다녔다. 늘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눌려 살았다. 그 느낌을 아이가 겪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한화는 야구를 참 잘 못하는 팀이(었)다. 이기는 맛으로 볼 거면 삼성을 응원했어야 할터, 왜 난 '바보' 한화팬 대열에 합류했던 거지? 돌이켜보면 내가 반했던 건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열심히 야구를 했던 팀- 한화였다. 그 어떤 한화팬도 이기는 날만 응원하지 않았다. 그냥 한화를 응원했다.
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딸의 삶을 응원할 작정이다.
이기지 않아도 좋아. '잘' 살지 않아도 좋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을 즐기며 열심히 사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니가 원하는 삶을 살자. 엄마도 그럴게.
ps.
한화엔 정현석이라는 선수가 있다. 1년 동안 암투병을 하고 얼마 전 그라운드로 돌아온 그는 복귀 첫 경기에서 수훈 선수로 뽑혔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그랬다.
"아프고 나니 그동안 야구를 즐기면서 하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럽더라구요."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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