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2
내가 참 많이도 닮았던 우리 할머니는 작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몇 년 전부턴 바깥 출입을 거의 못하셨지만 아침에 일어나시면 곱게 분부터 바르셨다. 부축을 받아서라도 단골 미용실에 가서 빠마 하는 것은 거르지 않으셨다. 보는 이 하나 없어도 그리 하셨다. 여자가 죽을 때까지 로맨스는 계속된다고 했던가. 아름답고 싶은 욕망이 그에 뒤질 것 같진 않다. 노인이라고 다르지 않고 엄마라고 괜찮지 않다. 나도 그랬다.
아이를 가지며 여자의 몸은 변한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살이 붙는다. 몸 곳곳에 아이의 흔적이 남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달라지는 게 있으니- 마음가짐이다.
'이제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뭐'
'어디 꾸미고 나갈 데도 없는데 뭐.'
'애보기도 바쁜데 꾸밀 시간이 어딨어.'
하지만 난 그 말의 진심을 안다.
'이제 잘 보일 사람도 없는데 뭐'
(애엄마가 어디 아가씨들 상대가 되겠어? ㅠㅜ)
'어디 꾸미고 나갈 데도 없는데 뭐.'
(꾸미고 나갈 데가 있으면 좋겠다.....)
'애보기도 바쁜데 꾸밀 시간이 어딨어.'
(아가야 엄마한테 꾸밀 시간 좀 줘 ㅠㅜ)
아이를 낳은 후 경제 관념이 달라졌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아이를 키우며 언제 어떤 일로 큰 돈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내 지갑을 소심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내 카드값에서 3할은 치던 의복비가 0에 수렴하기 시작했다. 대신 아이의 옷장은 점점 몸집이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딸에게 새 옷이 생겼다. 옷을 입혀 거울 앞에서 안아들었다. 아이는 봄처럼 싱그럽고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아이를 안은 나는 왠걸, 겨울 중에서도 강원도 최전방 혹한 마냥 무채색이었다. 순간, 아이를 핑계로 나 자신에게 스크루지처럼 굴지는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라서 '아껴 써야하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엄마니까 '실컷 써도 되는 자격'도 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 기틀을 잡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야. 응당 내 욕망에 충실할 자격이 있지. 그래, 이뻐지자! 그렇게 내 지갑은 봉인을 해제했다.
입고 나갈 일이 없으니 옷 살 일도 없다지만 예쁜 옷이 생기니 나갈 일을 만들고 싶어졌다. 주말엔 하늘에서 양동이로 비를 들이붓지 않는 이상 나갔다. 그 시간이 무척 기다려졌다. 아이와 이런 저런 옷을 입어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된 것도 같다. 고르고, 사고, 입는 것 모두가 설렜다. 나를 닮은 아이와 같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는 순간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아이의 볼에 마구 뽀뽀를 날렸다. 딸은 영문도 모른 채 꺄르르 같이 웃었다.
생각해보면 딸은 내가 웃을 때 항상 같이 웃었다.
그렇게 아이와 옷을 맞춰 입고 나온 날은 햇살이 눈부시든 눈비가 쏟아지든 사진을 찍었다. 예쁘게 나오려 찍은 것은 아니다. (물론 예쁘게 나오면 베스트다.) 아이와 내가 이렇게 알콩달콩 보낸 시간을 어떻게든 기억해두고 싶은 거다. 살며 언제 또 아이와 같은 옷을 입고 이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 결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 벌써부터 그리운 지금 이 순간이다.
자,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둘다 리스트> 세번째 미션 성공 :)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