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3
‘곤조’있는 육아를 위해 나는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첫 질문은 오랜 고민에서 나왔다.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걸까.” 엄마의 희생은 아주 오랜 세월 당연한 가치로 여겨져왔다. 나도 엄마의 희생으로 컸다. 감사한 일이다.
다만 내가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던 포인트는 그 ‘희생’이란 단어의 뉘앙스가 이미 엄마의 불행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었다. 엄마에겐 분명 ‘역할’이 있지만 그걸 (불행 섞인) ‘희생’이라 부르고 싶진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해질까. 80년대에 태어나 할머니들 말마따나 ‘좋은 세상’에서 산 나는 이미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되어버렸다.
난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긴다.
난 굽이 젓가락 만큼 얇은 10cm 하이힐를 신을 때 행복하다.
난 복숭아빛 블러셔를 볼에 바를 때 희열을 느낀다.
난 토요일 아침 삼청동 카페에 앉아 누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책 한 권을 사랑한다.
무엇보다 난 일할 때 미친 듯이 행복하다.
그 느낌들을 싸그리 포기하고서 아이탓, 가족탓을 안할 자신이 없었다. 언젠가 아이가 “땡큐”라고 말하면 지난 시간의 회한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대신 “뎃 워즈 마이 플레저”라고 쿨하게 웃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족에게, 아이에게 의존하지 않은 나만의 영역이 나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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