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1
껌딱지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은 요즘이다. 한시도 나와 떨어지려하지 않는 딸 덕에 밥 한끼 해먹기도 벅차다. 샤워할 때도 부둥켜 안은 채 같은 물줄기를 맞는다. 화장실에 갈 때면 아예 내 앞에 자리를 펴고 동화책을 읽는다. 한창 애교가 많을 때라 껌딱지 애교에 녹아내릴 때가 하루에도 여러 번. 하지만 엄마, 엄마하며 나만을 갈구하는 통에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꺄악. 저기 냄비가 부글부글 끓어넘치고 있는데
제발. 화장실이 급해 당장이라도 사단이 날 것 같은데
허얼. 급한 전화가 저 앞에서 울리고 있는데
아이는 내 바짓가랑이를 생명줄이라도 되는양 잡고 놔줄 생각이 없다.
'나는 진짜 진짜 엄마가 필요해.'
결연한 의지가 그 작은 눈에 가득하다.
내 머릿 속 가장 오래된 기억은 엄마의 칭찬이었다. 무언가 이쁜 짓을 했던 모양이다. (시장 다녀오는 길 짐을 나눠 들었다거나 엄마를 도와 빨래를 개켰다거나 그런 종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엄마는 내 덕에 한결 편하고 좋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딸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내가 엄마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에 그 작은 가슴이 마구 뛰었다.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날 며칠 밤을 샜다. 다크써클이 턱 밑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있을 그 즈음, 사수가 지나가며 한 마디 던졌다. "덕분에 회사가 돌아가네." 젖은 솜뭉치 마냥 한없이 가라앉아 있던 나의 멘탈이 부활한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아무리 고된 일이라 해도 나를 알아주는 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그 후로도 며칠을 들떠있게 했다.
그리고 지금. 난 내 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다.
아침에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나는 내 딸에겐- 뽀뽀 세례를 퍼부어줄 엄마가 필요하다.
수저를 휘저으며 식사 비슷한 것을 하는 내 딸에겐- 수없이 흘려도 수없이 그릇을 채워줄 엄마가 필요하다.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은 내 딸에겐- 수 십 번 수 백 번 같은 동화책을 읽어줄 엄마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딸이 나를 필요로 한다. 나 없으면 안된단다.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쓸모있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