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9
3달 전이었다. 본격적인 육아휴직에 들어서며 다짐 하나를 했다.
"딸을 위해 희생한 시간이 아닌,
아이와 나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먼훗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가슴을 치는 대신 '내가 그때 너랑 얼마나 재미졌는데'하며 딸과 깔깔대고 싶었다. 그래서 <둘다 리스트>란 걸 적었다.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10개의 TO DO LIST였다.
리스트의 힘은 생각보다 셌다. 덕분에 귀차니즘에 맞설 수 있었다. 하나하나 지워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하루가 수십 날 쌓이니 이만큼 뭔가를 했나 싶어 뿌듯해진다. 그렇게 서너 가지는 중간에 항목을 바꾸기도 하며 나만의 <둘다 리스트>는 순항 중이다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 (링크) 는 다음과 같았다.
(1)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 만들기
(2)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여행> 떠나기
(3)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4)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6)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책> 읽기
(7)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8)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마당> 꾸미기
(9)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집안일> 하기
(10)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기록> 남기기
나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를 만드는 건 <둘다 리스트>의 첫번째 미션이었다.
어려서부터 책과 도서관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책을 많이 읽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랬다. 놀이공원 마냥 뭔가를 상상하게 하는 공간이자 그 어떤 시름도 잠시 잊게 하는 평화로운 공간이라고 느꼈다. 그 로망은 나를 도서관에서 결혼하게 했다. 그리고 수없이 동네 도서관 주위를 어슬렁거리게 했으며, 마침내 그곳을 딸과의 첫 아지트로 삼기에 이르렀다.
집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와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골목을 돌면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그 나무에서 세 발짝을 더 걸으면 도서관이다. 집에서 걸리는 시간은 유모차 걸음 기준 8분. 무지개 푯말이 정겹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분명 도서관이로되 마을 사랑방 비스무리한 역할도 하는 곳이다. 흡사 가정집 거실을 연상시키는 가장 안 쪽의 공간에선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햇살을 쬐며 졸기 좋은 낡은 소파도 놓여 있다. 책은 몇 권이 되었든 들고 갈 수 있는 만큼 빌릴 수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준다. 사서 선생님은 열심히 책을 빌려가는 아이들의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느라 바쁘다. 이 곳에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내 품에서 벗어나 놀았다. 덕분에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그림책을 한참이나 뒤적뒤적이다
친구와 책장 너머 숨바꼭질을 했다.
율동도 배웠고 집에서 구워 온 고구마도 열심히 먹었다.
난 책 몇 권을 골라 소파에 기대 읽었다.
좋아하는 커피 우유를 홀짝였고
가끔 나의 미래를 고민했고
그보다 많은 시간 졸았다.
다른 엄마들과 아이 이가 몇 개 났는지를 두고
한참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평화가 넘실넘실 흐르는 시간.
시간이 오래 지난 후 '그 때 그랬는데'하며 더없이 그리울 시간.
<둘다 리스트> 첫번째 미션 완료!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