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5
무심코 뱉는 한마디 한마디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한 마디 말에 우린 감동하고 공감하며 때론 실망한다. 나 역시 '말'로 인해 누군가에게 실망했던 적이 있다. 5년 전 쯤, 당시 이 나라의 대통령이셨던 분이 청년실업 문제를 두고 젊은이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청년 여러분. 눈높이를 낮추십시오."
낮추라고?
그는 서울에 있는 대기업만 선호하는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중소기업, 지방기업에서 기회를 찾아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그는 눈높이를 '낮추라'라고 말했다. 그 말에 그의 뿌리깊은 생각이 깔려 있었다. 그에게도 '높은' 곳은 대기업이고 '낮은' 곳은 중소/지방기업인 거다. 그의 말은 중소/지방기업을 꺼리는 청년들의 인식에 쐐기를 박았다.
그가 정말 청년들이 다양한 도전을 하길 원했다면 눈높이를 '낮추라' 말할 것이 아니라 눈을 '돌려보라'고 했어야 한다. 그 말은 물론 '중소/지방기업도 대기업 못지 않은 비전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나올 수 있었겠지만.
반면 한 마디 말에 담긴 생각에 감동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번엔 내 남편 이야기다. 신혼 초, 나와 남편이 시어머니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되지 않아 이런 저런 살림 이야기가 오갔던 모양이다. 며느리가 어제 저녁에 무얼무얼 해먹었다 자랑하니 어머니가 알콩달콩 사는 게 기특하셨던 모양이다. 남편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
"아들이 집안일도 많이 돕고 그래."
자라면서 아빠가 부엌에 들어와계신 걸 본 적이 없는 내겐 충분히 감사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왠걸. 그 말에 남편이 반기를 들었다.
"도와주는 게 아니지. 같이 하는 거지."
3초 정도 당황스러웠다. 3초 후엔 감동했다. 그 말에 깔린 남편의 생각이 고마웠다. "그래. 아들 말이 맞네." 라며 웃으며 맞장구 치신 시어머니가 삶으로 가르치신 생각이다. 그 생각은 말로 표현됐고 그 말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남편은 정말 나와 '함께' 집안일을 해나갔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잠에서 깬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남편이다. 늦은 저녁 첨벙첨벙 아이의 물장구에 옷이 흠뻑 젖도록 목욕을 시키는 것도 남편이다. 무한도전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스텝을 밟고 풍선으로 공놀이를 하는 것도 남편이다. 남편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같이 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건 집에서 애 보는 엄마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남편이 밖에서 힘들게 돈 버는데 집에 와서 애까지 보라고 하면 안되지."
안다. 돈 버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드라마 <미생>을 보며 이 시대 직장인들의 비애에 공감했다. 포탈 메인엔 하루가 멀다하고 일과 직장에 치여 힘들어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내걸린다. 며칠 전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대기업 최연소 임원의 타이틀을 달었던 이의 자살이 뒤늦게 기사화되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혹 보셨는지.
그는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했다. 실적이 그를 압박해왔고 사내 정치와 동료와의 갈등이 스트레스에 불을 붙였다. 주말에도 출근하거나 접대를 위해 골프장으로 나섰다. 그렇게 평생 일만 알고 살았는데 결국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기사 제목처럼 '일'이 그를 죽였다. 하지만 '가족'이 그를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전쟁터같은 직장에서 지친 마음을 가족이란 울타리에 기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그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회사와 집만을 오가며 직장에 헌신했다. 우리 남매가 어릴 적 그러니까 아빠의 30대 시절엔 특히 그랬다. 우리가 눈 뜨기 전에 출근했고 잠들고 한참이 지나서야 퇴근했다. 주말에 아빠는 늘 코골며 주무시거나 TV 앞에 누워 계셨다. 가족을 위해 일에 미쳐 살았지만 그로 인해 커가는 아이를 아내의 몫으로 돌렸다. 그 시간이 이어지고 쌓여 가족이란 울타리 밖을 어색하게 맴도는 존재가 되어갔다. 시간이 지나 우린 컸고 아빠는 한가해지셨다. 하지만 더 이상 함께 재잘댈 '추억'이 기억나지 않았다. 같이 걸을 때면 괜히 뻘쭘해 한 발 앞서 걷곤 하셨다. 우리들의 아빠들은 그렇게 살았다.
아이들이 커가는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다.
가족 모두를, 특히 아빠를 위해서다.
남편은 출근 전과 퇴근 후, 주말에 온 몸을 바쳐 아이와 논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마음의 여유와 몸의 휴식을 선물한다.
남편에겐 딸과의 추억거리가 쌓인다. 가족이란 울타리가 점점 견고해진다.
딸에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우리 아빠가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녁이 있는 삶 만큼이나
가족이 있는 삶이 아닐런지.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