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7
고백하건대 살며 수많은 훈수를 뒀다. 아가씨 시절에도 어디서 들은 건 있었는지 지인의 육아에 열심히 훈수를 두곤 했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엄마가 되고서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간 뒀던 시퍼런 훈수가 얼마나 못돼 먹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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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제왕절개로 오빠와 나를 낳았다. 엄마 말론 너무 아파서 의사 선생님 붙들고 수술해달라 애원했다고 했다. 사춘기 즈음이었나. TV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마뜩찮았던 터라 마침 옆에 있던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기왕 낳는 거 좀 더 참아서 자연분만하지 그랬어. 엄마가 수술해서 내가 이런가봐."
엄마는 대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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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얼굴 한 번 보자 졸랐다. 언니는 아이가 10명은 들어감직한 거대한 짐과 함께 나타났다. 안부를 물을 겨를도 없이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날랜 손놀림으로 젖병에 분유를 타는 언니에게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아, 모유 안 먹여요? 애한테는 모유가 최고라던데."
언니는 무어라 길게 이유를 설명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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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좋았던 건지 일상이 따분했던 건지 비행기를 자주 탔다. 여행의 설렘은 출발편 비행기에서 착석하는 그 순간에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타면서부터 칭얼댐을 장착하고 있던 아이가 옆자리에 앉는 순간 그 감정은 푹- 꺼진다. 비싼 돈 내고 탄 비행기에서 고생할 생각을 하니 심술이 났다.
'애 좀 크면 데리고 다니지...'
곁눈질로 삐져나온 나의 소심한 신경질에 아이 엄마는 좁은 복도를 수없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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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지 않은 주택에 사는지라 유리창 너머로 앞집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풍경은 늘 똑같았다. 5,6살 짜리 아이가 거실 한 가운데서 TV를 보고 있다. 커다란 TV에선 만화가 한창이다. 창가 소파에 앉은 아이 엄마의 뒤통수는 풍경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나며 늘 생각했다.
"저 집은 어째 볼 때마다 TV를 켜놓냐. 애 정서에 안 좋게."
그런데 말이다. 상황이 역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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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일이 2달 가까이 남았던 어느 새벽 양수가 터졌다. 애기 양말 한 짝 사둔 것도 없을 때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다급했다. 엠뷸런스를 타고 출근시간 강남을 역주행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마취과, 소아과 전문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긴급수술을 했다. 그렇게 내 아이도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나처럼. 마취가 풀려 붓기와 고통에 시달릴 즈음, 지인들이 병원을 찾아왔다. 마침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한 친구는 출산에 꽤 관심이 많았다.
"아, 수술했구나. 그럼 진통도 전혀 안했어? 애 거저 낳았네~대박~"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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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한 탓에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하루에 4시간 씩 어두운 방에서 유축을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분유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아이를 굶길 수 없으니까. 유축할 때도 분유를 탈 때도 젖병을 물릴 때도 출산 소식을 접한 지인들의 카톡이 쏟아졌다. 우리가 흔히 '밥은 먹고 다니냐'며 건네는 인사처럼 아이에게 건네는 인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모유는 잘 먹고?" 처음엔 이런이런 이유로 분유와 섞어 먹인다며 주저리 주저리 설명했다. 그런데 열에 일곱 쯤은 이런 반응이었다.
"그래도 모유가 좋다는데. 어지간하면 모유 먹여~"
"응. 그냥 저냥 잘 먹어."라고 말수를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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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는 것에 '여행' 이외의 이름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살기 전까진 몰랐다. 아이는 한국에서 낳고 싶어 비행기를 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비행기를 탔다. 낯선 기내에서 아이는 울었다. 아가씨 시절 내가 곁눈질로 줬던 눈치를 고스란히 받았다.
"......후......(ㅁ니앎농리;ㅣㅏㅓㅇ)"
옆자리 승객이 얕은 한숨과 함께 뒤척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시계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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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사는 나는 이 나라에서 외국인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위축될 때가 많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아이의 언어다.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가정의 엄마들처럼 나도 그런 걱정을 한다. 엄마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해 혹 아이가 엉엉 울 날이 오는 건 아닐까. 아이가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하자 걱정이 점점 덩치를 불린다. 그 날도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며 어찌 눈과 입을 틔워줄까 고민하고 있었다. 창문너머 앞집 TV엔 오늘도 어김없이 만화가 틀어져 있었다. 늘 뒤통수만 봐왔던 앞집 엄마가 그날따라 고개를 돌려 창 너머로 인사를 건넨다.
"Hello."
앞집 엄마는 외국인이었다. 나처럼.
늘상 켜져 있던 TV는 엄마 대신 이 나라 말을 알려줄 고마운 선생님이었을 거라고, 처음으로 짐작했다.
아무리 못난 엄마도 엄마다. 엄마만큼 아이를 깊이 위하고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육아가 어설퍼 보인다면 모든 인생이 그렇듯 육아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피치못할 상황'에 맞닥뜨린 게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필요한 건 훈수가 아닌 격려다. 아이의 인생키를 쥔 엄마의 멘탈은 바람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멘탈'이니까.
사실 우리 사는 게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안부를 가장해서 주고 받는 훈수라고 안녕할까.
살 안 빼냐, 결혼 안하냐, 취직 안했냐, 애 안 낳냐 (둘째 안 낳냐)
살 빼는 덴 그게 좋더라, 결혼은 공무원이랑 해라, 내년엔 취직 더 힘들다더라, 자식없음 말년이 외롭다, 둘째 없으면 첫째 외롭다
듣는 이는 침묵한다. 들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야 좋은 훈수일진데, 이 훈수는 어찌된 게 응어리만 남는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귀찮아서 안하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다. 조언을 가장한 훈수가 아니라 침묵을 가장한 격려가 간절할 때가 있는 거다.
2년 남짓 아이를 키우며 타인의 존재에 무척이나 고마웠던 순간이 있다. 모유 문제로 한창 속앓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몇 해 먼저 엄마가 된 친구에게 모유가 잘 도는 방법이 있나 싶어 조언을 구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친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모유 좋지. 근데 요즘 분유도 좋아.
글구 모유 아니라도 애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많다 너.
그나저나 ㅇㅇ이 혼 좀 나야겠네.
엄마 얼굴 이렇게 헬쓱하게 만들고."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해준 그 말이 참 생소했다.
엄마는 품는 순간부터 아이를 위해 산다. 나의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제 아이에게 사랑을 내린다. 다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를 위해 내 손을 쥐고 터덜터덜 걸어줄 그런 존재가 그립다. 그라면, 입바른 훈수 대신 그냥 말없이 다독여줄 것 같다.
누군가의 육아에 훈수를 두고 싶다면 먼저 자문해볼 것.
'이 훈수, 엄마 마음으로 두는 건가.'
아니라면 그 훈수- 고이 접어 마음 속에 넣어둬~ 넣어둬~ (feat. 라 상무)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