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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Aug 26. 2015

육아에 훈수를 금합니다.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7

고백하건대 살며 수많은 훈수를 뒀다. 아가씨 시절에도 어디서 들은 건 있었는지 지인의 육아에 열심히 훈수를 두곤 했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 엄마가 되고서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간 뒀던 시퍼런 훈수가 얼마나 못돼 먹었었는지.



엄마가 되기 전, 세상의 많은 엄마들에게 훈수를 뒀었다.


#


나의 엄마는 제왕절개로 오빠와 나를 낳았다. 엄마 말론 너무 아파서 의사 선생님 붙들고 수술해달라 애원했다고 했다. 사춘기 즈음이었나. TV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뭐 하나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마뜩찮았던 터라 마침 옆에 있던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기왕 낳는 거 좀 더 참아서 자연분만하지 그랬어. 엄마가 수술해서 내가 이런가봐."

엄마는 대꾸가 없었다.


#


아는 언니가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얼굴 한 번 보자 졸랐다. 언니는 아이가 10명은 들어감직한 거대한 짐과 함께 나타났다. 안부를 물을 겨를도 없이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날랜 손놀림으로 젖병에 분유를 타는 언니에게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아, 모유 안 먹여요? 애한테는 모유가 최고라던데."

언니는 무어라 길게 이유를 설명했던 것 같다.


#


여행이 좋았던 건지 일상이 따분했던 건지 비행기를 자주 탔다. 여행의 설렘은 출발편 비행기에서 착석하는 그 순간에 최고조에 이른다. 하지만 타면서부터 칭얼댐을 장착하고 있던 아이가 옆자리에 앉는 순간 그 감정은 푹- 꺼진다. 비싼 돈 내고 탄 비행기에서 고생할 생각을 하니 심술이 났다.


'애 좀 크면 데리고 다니지...'

곁눈질로 삐져나온 나의 소심한 신경질에 아이 엄마는 좁은 복도를 수없이 걸었다.


#


높지 않은 주택에 사는지라 유리창 너머로 앞집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풍경은 늘 똑같았다. 5,6살 짜리 아이가 거실 한 가운데서 TV를 보고 있다. 커다란 TV에선 만화가 한창이다. 창가 소파에 앉은 아이 엄마의 뒤통수는 풍경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나며 늘 생각했다.


"저 집은 어째 볼 때마다 TV를 켜놓냐. 애 정서에 안 좋게."


그런데 말이다. 상황이 역전됐다.




엄마가 된 후로, 수많은 이들이 나의 육아에 훈수를 뒀다.  


#


예정일이 2달 가까이 남았던 어느 새벽 양수가 터졌다. 애기 양말 한 짝 사둔 것도 없을 때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다급했다. 엠뷸런스를 타고 출근시간 강남을 역주행했다. 대학병원 산부인과, 마취과, 소아과 전문의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긴급수술을 했다. 그렇게 내 아이도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나처럼. 마취가 풀려 붓기와 고통에 시달릴 즈음, 지인들이 병원을 찾아왔다. 마침 결혼을 앞두고 있던 한 친구는 출산에 꽤 관심이 많았다.


"아, 수술했구나. 그럼 진통도 전혀 안했어? 애 거저 낳았네~대박~"

얼굴이 화끈거렸다.



#


조산한 탓에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았다. 하루에 4시간 씩 어두운 방에서 유축을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분유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아이를 굶길 수 없으니까. 유축할 때도 분유를 탈 때도 젖병을 물릴 때도 출산 소식을 접한 지인들의 카톡이 쏟아졌다. 우리가 흔히 '밥은 먹고 다니냐'며 건네는 인사처럼 아이에게 건네는 인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모유는 잘 먹고?" 처음엔 이런이런 이유로 분유와 섞어 먹인다며 주저리 주저리 설명했다. 그런데 열에 일곱 쯤은 이런 반응이었다.


"그래도 모유가 좋다는데. 어지간하면 모유 먹여~"

"응. 그냥 저냥 잘 먹어."라고 말수를 줄였다.



#


비행기를 타고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는 것에 '여행' 이외의 이름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살기 전까진 몰랐다. 아이는 한국에서 낳고 싶어 비행기를 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비행기를 탔다. 낯선 기내에서 아이는 울었다. 아가씨 시절 내가 곁눈질로 줬던 눈치를 고스란히 받았다.


"......후......(ㅁ니앎농리;ㅣㅏㅓㅇ)"

옆자리 승객이 얕은 한숨과 함께 뒤척일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시계를 봤다.  




#


외국에 사는 나는 이 나라에서 외국인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위축될 때가 많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아이의 언어다. 한국에 시집온 다문화가정의 엄마들처럼 나도 그런 걱정을 한다. 엄마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해 혹 아이가 엉엉 울 날이 오는 건 아닐까. 아이가 조금씩 입을 떼기 시작하자 걱정이 점점 덩치를 불린다. 그 날도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가며 어찌 눈과 입을 틔워줄까 고민하고 있었다. 창문너머 앞집 TV엔 오늘도 어김없이 만화가 틀어져 있었다. 늘 뒤통수만 봐왔던 앞집 엄마가 그날따라 고개를 돌려 창 너머로 인사를 건넨다.


"Hello."

앞집 엄마는 외국인이었다. 나처럼.

늘상 켜져 있던 TV는 엄마 대신 이 나라 말을 알려줄 고마운 선생님이었을 거라고, 처음으로 짐작했다.




민들레 멘탈에 필요한 건 훈수가 아닌 격려



아무리 못난 엄마도 엄마다. 엄마만큼 아이를 깊이 위하고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육아가 어설퍼 보인다면 모든 인생이 그렇듯 육아에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피치못할 상황'에 맞닥뜨린 게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필요한 건 훈수가 아닌 격려다. 아이의 인생키를 쥔 엄마의 멘탈은 바람 불면 날아가는 '민들레 멘탈'이니까.


사실 우리 사는 게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안부를 가장해서 주고 받는 훈수라고 안녕할까.


살 안 빼냐, 결혼 안하냐, 취직 안했냐, 애 안 낳냐 (둘째 안 낳냐)

살 빼는 덴 그게 좋더라, 결혼은 공무원이랑 해라, 내년엔 취직 더 힘들다더라, 자식없음 말년이 외롭다, 둘째 없으면 첫째 외롭다


듣는 이는 침묵한다. 들어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야 좋은 훈수일진데, 이 훈수는 어찌된 게 응어리만 남는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귀찮아서 안하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다. 조언을 가장한 훈수가 아니라 침묵을 가장한 격려가 간절할 때가 있는 거다.




왜 그렇게 헬쓱해졌어. 생소한 그 말이 고마웠다.


2년 남짓 아이를 키우며 타인의 존재에 무척이나 고마웠던 순간이 있다. 모유 문제로 한창 속앓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몇 해 먼저 엄마가 된 친구에게 모유가 잘 도는 방법이 있나 싶어 조언을 구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친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모유 좋지. 근데 요즘 분유도 좋아.

글구 모유 아니라도 애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많다 너.

그나저나 ㅇㅇ이 혼 좀 나야겠네.

엄마 얼굴 이렇게 헬쓱하게 만들고."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해준 그 말이 참 생소했다.


엄마는 품는 순간부터 아이를 위해 산다. 나의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이제 아이에게 사랑을 내린다. 다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를 위해 내 손을 쥐고 터덜터덜 걸어줄 그런 존재가 그립다. 그라면, 입바른 훈수 대신 그냥 말없이 다독여줄 것 같다.



누군가의 육아에 훈수를 두고 싶다면 먼저 자문해볼 것.

'이 훈수, 엄마 마음으로 두는 건가.'


아니라면 그 훈수- 고이 접어 마음 속에 넣어둬~ 넣어둬~ (feat.  )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1.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feat. 엉망 엄마

#2. 그래, 엄마에겐 ‘곤조’가 있어야 한다.

#3. 엄마는 희생해야만 하는걸까?

#4. 육아에도 기획이 필요하다.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

#6. 아이도 엄마도 행복한 육아 <둘다 리스트 10가지>

#7. 육아에 훈수를 금합니다.

#8. 육아우울증 극복을 위한 Tip 5가지

#9. 워킹맘의 육아휴직 손익계산서

#10. 딸. '잘' 살 필요없어.

#11. 딸. 엄마를 필요로 해줘서 고마워.

#12. 딸. 엄마랑 사진찍자, 100장 찍자.

#13. 딸. 엄마랑 커플룩입어볼까?

#14. 딸. 엄마가 우리 딸 맘을 몰랐네.

#15. 딸. 아빠는 도와주는 게 아냐.

#16. 딸. 맘충이라고 들어봤니.

#17. 딸. 오늘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말야.

#18. 딸. 문제는 전업맘일까?

#19.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아지트> 만들기

#20. 딸.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건 아냐.

#21.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친구> 사귀기

#22.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커플룩> 입기

#23. 딸. 엄마가 바라는 추석은 말야.

#24. 딸. 외동이면 외로울까? 

#25.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춤>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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