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12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셨다. 스물 몇 살 엄마 아빠가 설악산 흔들바위 앞에서 웃고 계셨다. 두 분의 우연한 첫 만남, 무려 35년 전의 사진이다.
"이때 어떻게 알았겠어. 니 아빠랑 만나서 니네 낳고 살게 될 줄."
이 사진 한 장을 앞에 두고 엄마 아빠는 한참이나 이야기꽃을 피우신다. 이 필름 사진 한 장이 말해준다. 그 순간이 얼마나 운명적이었는지, 그 때 두 분이 얼마나 싱그러웠는지. 찍어두지 않았다면 까맣게 잊혀졌을 순간이다.
젊을 땐 젊음을 모르고, 행복할 때 우린 그 행복을 등잔 밑에 둔 채 순간을 흘려보낸다. 육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반복되는 일상에 마음이 지치고 24시간 전담마크에 몸은 탈이 난다. 하지만 분명 빛나는 시간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처음'의 연속이니까. 너무 평범하고 고요하며 익숙한 이 행복을 꼭꼭 눌러 적어놓고 싶다. 언제고 딸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꺼내서 신나게 이야기하고 싶다.
젊디 젊은 아빠의 발등을 밟고 춤을 추던 다섯 살 내 사진
엄마가 사 준 조다쉬 가방을 매고 신났던 입학식 가족 사진
SES 바다의 더듬이 머리를 하고 찍은 운동회 단체 사진
그 순간 순간을 떠올리고 있자니 내가 기억하는 건 '그 순간'이 아닌 '그 순간을 찍은 사진'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찍어놓지 않았으면 기억하지 못했을 그 수많은 순간에 새삼 감사하다.
태어나 처음 오리고기를 먹어본 오늘 저녁 밥상도,
처음 꼭대기에서 내려와 본 미끄럼틀도,
아이유 언니 노래 들으며 신나게 벌인 춤판도,
태어나 처음 앉아본 책상도 모두 찍어두자.
그리고 사는 내내 우리가 얼마나 따뜻하게 빛나는 시간을 함께 했는지 기억하자.
100장 찍자, 1000장 찍자, 많이 찍자.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