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9
아이 키우는 분이라면 공감할 거다. 아이와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집은 더없이 편안하지만 한없이 갑갑한 곳이기도 하다. 그 갑갑함을 이기려 동네 마실도 다니고 뭐 더 살 거 없나 마트를 기웃거리곤 했다. 집에 있으면 시간이 우두커니 멈춰선 기분이었다. 이 집 안에 다만 한뼘이라도 여행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하고 늘 바랐다.
엄마도 아이도 둘다 행복한 일을 만들어보려 적었던 <둘다 리스트>에 그 소망을 담았다. 뒷마당을 나도 아이도 좋아할 만한 공간으로 꾸며 보기로 한 거다. 그 공간의 컨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서 얻었다. 잔디밭에서 엄마, 아빠가 햇살을 쬐며 커피 한 잔 마시는 사이 아이들은 그 옆에서 신나게 장난감 자동차와 자전거를 타고 논다. 필요한 건 편하게 몸을 누일 빈백 (Bean bag)과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몇 개- 그 뿐이었다. 이 공간을 마당에 펼쳐놓고 싶었다.
동네 잡화점에서 6만원 주고 빈백을 샀다. 마당의 하늘색 벽과 색깔을 맞춘 팬더 쿠션도 같이 카트에 넣었다. 볕 좋은 날 빈백에 널부러져 있으니 세상 평화는 다 내 것인 것만 같다.
그 평화에 가산점을 줄 음료와 간식, 책을 놓을 박스는 딸래미 소유의 레고 상자 뚜껑으로 낙찰. 뚜껑의 움푹 패인 홈에 맥주를 꽂으니 테이크아웃 트레이로도 속색이 없다. 다음 달에 떠날 교토 여행책을 맥주 사이에 놓았다. 이 작은 잔디밭에 이토록 설렐 수도 있구나. 여행 냄새가 났다.
요즘 아이가 흠뻑 빠져 있는 미끄럼틀과 자동차, 자전거도 볕 아래 꺼내놓았다. 볕 좋은 날이면 썬크림 듬뿍 발라 이 곳에서 놀게 해줘야지. 옆집 또래 친구도 한 번 오라고 해야겠다. 이 곳에서 흙파고 낙서하며 씩씩하게 자라렴. (엄마는 옆에서 커피 한 잔의 낭만을 좀 즐기자꾸나.)
빨래 널 때만 나와 보던 뒷마당이- 나는 설레고 아이는 즐거워 할 공간이 되었다.
한국이 가을을 맞이하는 사이 이 곳엔 봄이 와버렸다. 마당에 녹음이 짙게 깔렸다. 햇살이 점점 따뜻해진다. 그러고보면 요즘- 내 인생도 봄날이다. 마지막 남은 치즈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주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왈칵한다. 떠듬떠듬 내 말을 따라하는 아이를 보며 행복에 기가 막힌다. 다리를 주물러주는 아이의 고사리 손에 없던 병도 나을 기세다.
이 봄이 그러하듯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시간도 지나간다. 그리곤 다시 오지 않을 거다. 그래서 더욱 이 시간이 소중하고, 이 마당에 내려앉은 볕이 고맙다. 모쪼록 이 공간이 아이와 나의 봄날에 아주 오래 기억될 한 장면이 되길.
자,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마당 꾸미기"
<둘다 리스트> 여덟 번째 미션 성공 :)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