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틀즈의 나라에서 비틀즈를 듣고
카이얀.
그녀는 LSE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이자 첫 카우치서핑의 첫 번째 호스트이다. 나는 그녀가 지내고 있는 기숙사 LSE Northumberland House에서 이틀간 머물기로 되어있다. 당시에는 잘 몰랐으나 LSE는 세계적인 명문이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는 영국 잉글랜드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사회과학 특화 공립 대학이며 세계적인 명문... 영국 내에서 가장 학부 경쟁률이 높은 대학이며, UN 회원국보다 많은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 전체 재학생의 66%를 차지... 2011년까지 16명의 문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1990년 이후 현재까지 8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해내는 기록을... 그 외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 일본 총리 아소 타로, 이탈리아 총리 로마노 프로디를 비롯한 34명의 국가 정상을 배출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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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무사히 그녀를 만났으니 됐다. 우리는 함께 숙소로 향했다. 이 명문 대학의 기숙사는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있었는데, 학생카드가 있어야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카이얀은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크지 않은 방을 여학생 둘이 함께 사용하는데 둘의 침대 사이 바닥이 내 자리였다.
그녀는 마침 방에 있던 룸메이트를 소개해 주고는 수업이 있다며 곧바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룸메이트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이전에도 이 방에서 카우치서핑을 여러 번 했었고, 정말 멋진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중에는 남자도 있었다고- 그녀는 소리 내어 웃으며 그간의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지내는 경험이 무척 흥미로웠기 때문에 카이얀이 카우치서퍼에게 이 방을 제공하겠다고 할 때 자신도 말리지 않는다고 했다. 대단하구만..
대충 짐을 정리해두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기 때문에 거리는 작은 전구들로 반짝였고 강 주변으로 마켓이 늘어서 있었다. 나는 마켓을 기웃거리며 처음보는 신기한 소품들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강바람이 쌀쌀해서 (패키지디자인 서적에서 보았던!) EAT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도 한잔 마셨다.
다음날 아침.
공용 부엌에 가서 시리얼에 우유를 부으며 습관처럼 라디오 앱을 켰는데 배철수아저씨 목소리가 흘러나와 깜짝 놀랐다. 배캠을 들으면서 아침을 먹다니. 정말로 지구 반대편에 왔구나. 게다가 이어지는 곡은 Oasis의 Whatever. 밥 먹으면서 음악듣는 것만으로 이런 기분이 들 수 있다니. 여기는 비틀즈의 나라, 오아시스와 콜드플레이의 나라, 데이빗 보위, 롤링스톤즈, 퀸, 라디오헤드, 버브, 뮤즈의 나라인 것이다!
나가면 바로 트라팔가 광장일만큼 엄청난 중심가였기 때문에 내셔널 갤러리, 런던아이, 빅벤,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듣던대로 자주 비가 왔지만 나는 런더너처럼 우산 없이 하루 종일을 걸어 다녔다. 영국식 발음을 흉내 내며 누구에게나 길을 물었고, 알아듣지 못해도 땡큐! 하며 다시 걸었다. 지도도 있고, 구글맵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물어보는 게 제일 빨랐다. 그 당시의 구글맵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코벤트 가든 근처를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이런저런 티켓을 저렴하게 파는 곳을 발견했다. 뮤지컬 하나쯤 보고싶은 마음에 전광판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내게 아저씨는 <Let it be>를 추천했다. 처음 듣는 뮤지컬이었지만 나는 비틀즈라는 말만 믿고 덥석 티켓을 샀다. 아저씨는 영수증 같은 종이에 펜으로 뭐라 뭐라 적어주면서 들어갈 때 이 표를 내라고 했다. 제대로 된 표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아저씨를 믿기로 했다. 악수를 하고 손으로 쓴 티켓을 받았다.
<Let it be>는 뮤지컬이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비틀즈의 공연 일대기를 완벽 재현한 무대에 가까웠다. 비틀즈의 데뷔 당시부터 앨범 순서대로 공연이 진행되는데 무대 양쪽에 설치된 빈티지 TV에서 실제 비틀즈의 공연 영상을 함께 볼 수 있다. 그 영상 속의 모습과 앞에서 공연중인 밴드의 모습이 너무나 똑같아서 5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진짜 비틀즈의 공연을 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지경이었다. 그 당시 의상과 헤어 스타일, 연주했던 악기는 물론 말투, 제스처까지 진짜 비틀즈같았다. 영상 속 존 레논이 공연 도중 오른팔을 들어 손을 흔들면 동시에 무대 위 존 레논도 오른팔을 들어 손을 흔드는 식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정말 엄청났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 밤거리를 한참이나 쏘다녔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카이얀과 옌이에게 내가 오늘 뭘 봤는지, 얼마나 좋았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감정을 다 전달하기에는 내가 영어를 너무 못하고 나보다 한참 어린 그녀들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음날엔 카이얀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카우치에 보답하는 의미로 내가 점심이라도 한 끼 사고 싶다고 한 것이다. 카이얀은 코벤트가든 근처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려갔고, 우리는 피쉬앤칩스를 하나씩 포장해서 나왔다. 코벤트가든은 신기한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거리였기 때문에 우리는 길바닥에 대충 앉아서 버스킹 음악을 들으며 피쉬앤칩스를 먹었다.
기숙사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지만 첫 카우치서핑 치고 성공적인 것 같다. 어쨌든 무사히 그녀를 만났고 이틀동안 지내면서 런던의 중심가에도 익숙해졌으니. 어린 나이에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곳에 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이 곳의 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계속 지내다 보면 점점 더 마인드가 오픈되어 엄청나게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물렀던 자리를 정돈하고 나오면서 내가 선물한 포스터가 벌써 벽에 붙어있는 걸 보고 흐뭇해졌다. 이제 두 번째 호스트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