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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Mar 12. 2022

부럽지가 않어

나는 왜 장기하가 부러운가

2022년 2월 22일. 장기하 씨의 솔로 앨범이 나왔습니다. 이 앨범이 나올 것임을 알리는 <2022년 2월 22일>을 들으면서 저는 엄청난 부러움에 휩싸이고 말았는데요. ‘장기하가 장기하 했다’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 없는 이 곡을 여러 번 돌려 듣고 있자니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장기하 씨와 알고 지내고 싶다”고 말해왔습니다. 대체 왜,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가, 돌아보니 이거 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마음이더라고요. 몇 년에 걸쳐 장기하 씨와 관련된 ‘머지의 순간’이 하나 둘 발생했고, 그것들이 쌓이면서 ‘장기하’라는 인간에 대한 호감도가 점점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어요.

*머지의 순간 : 주로 너무 좋은 걸 보거나 들었을 때 ‘이건 머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을 부르는 말


<싸구려 커피>가 센세이션한 인기를 끌면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인디계의 서태지와 아이들로 불리며 등장했으므로 처음부터 그의 존재는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4학년으로 졸업전시를 준비 중이었는데, 졸전준비위원회의 싸이월드 카페 BGM이 싸구려 커피였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 1집 : 별일 없이 산다


졸업 후 취직한 첫 회사에서도 저는 업무시간 내내 라디오를 들었는데요. 이문세 아저씨가 진행하는 아침 라디오에 신인 장기하 씨가 고정 게스트로 나왔습니다. 대중적으로는 낯선 인디음악을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그가 소개하는 곡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뭐예요. ‘아직 너에 대해 잘 모르나 본데, 넌 사실 이런 음악을 좋아할 거란다’하고 알려주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요. 일단 모조리 받아 적어두고, 들을만한 라디오가 없는 시간대에 그 음악들을 찾아 듣는 것이 회사 생활의 소소한 기쁨이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장기하의 추천은 무조건 좋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감이 급상승한 계기가 된 것은 또 다른 라디오에서였어요. 게스트로 나온 장기하 씨가 이적 씨의 앨범에 대해 “타이틀곡 <다행이다>는 솔직히 내 취향 아니고, 이 앨범에서는 <어떻게>라는 곡이 제일 좋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는데요. 대수롭지 않게 던진 그 말에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면 저도... 진짜 진심으로 완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 생각해 보면 이전에도 장기하가 추천해 준 노래는 다 좋았잖아. 이 사람 진짜 나랑 취향이 비슷한 거 같은데. 근데 그렇다고 해도 이런 생각까지 이렇게 똑같이 할 수가 있나? 다들 <다행이다>를 좋아하는데 말이야.’


그로부터 몇 년 뒤. 라디오 게스트로 가끔 활동하던 장기하 씨가 DJ가 되어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장대라)’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의 생각에 결정적인 방점을 찍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인디음악이 취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저는 Jango라는 사이트에서 ‘Indie pop rock’ 스테이션을 즐겨 들었어요. 듣다 보면 ‘이거 뭐지?????’싶은 음악들이 가끔 있었고, 그런 음악들은 저장해 두고 꼭 다시 찾아 듣곤 했는데요. 테임 임팔라의 <Feels like we only go backwards>도 그런 곡 중 하나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장대라에서 이 곡이 나오는 겁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밴드라며 장기하 씨가 테임 임팔라를 소개했고, 저는 일시 정지되고 말았어요.


이 사람 진짜 뭐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 곡을 한국 라디오에서 들을 일은 없을 줄 알았거든요. (테임 임팔라가 그때부터 이미 핫한 밴드였을 수도 있지만 그런 건 모르겠고) 당장이라도 장기하 씨를 만나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경로로 테임 임팔라를 알게 된 거냐, 음악을 주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찾아 듣냐... 등등. 아마 ‘장기하 알고 지내기’가 제 버킷리스트에 추가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뭐 어떤 식으로 알고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여간 알고 지내면서 음악 추천도 받고 싶고, 수다도 떨고 싶고, 비틀즈 음악이 나오는 LP 바에서 한잔하면서 크으으으 감탄하고 싶기도 해요. 우린 분명 같은 걸 좋아할 거거든요. 그런데 제가 장기하 씨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 뾰족한 수가 생긴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아직 가지고 있어요.




사실 제가 2월생인데 장기하 씨도 2월생이라고 합니다. 지난 호에서 밝혔듯이 저는 2012년에 처음 런던에 갔는데요. 장기하 씨의 첫 영국 여행도 2012년이었다고 합니다. 아니, 이 정도면 거의 평행이론 아닌가 싶어 대흥분 상태인 저에게 만쥬님이 그러더군요. “런던이 무슨 오키나와 거쳐서 배 타고 들어가야 하는 요론섬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 다 알고, 다 가는 유명한 곳인데 그게 뭐 대수냐”고요. 그래요. 맞아요.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언젠가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될 것만 같다는 희미한 실 한 가닥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요.


이쯤 되면 저는 장기하 씨의 음악보다는 그의 음악적 취향과 삶의 방식에 더 이끌린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거나, 인생에서 ‘좋은 기분'보다 중요한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거나, 마음대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해서 자신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가를 기준 삼아 일을 선택한다거나. (객관적 판단일지 자신은 없지만) 저와 비슷한 재질의 사람이 틀림없어 보여요. 차이점이 있다면 장기하 씨는 지향하는 바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고,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겠죠.


장기하 씨의 첫 솔로 음반을 들으면서 점점 화가 났던 건 아마도 ‘자기답게 살기 위한 선택을 계속하면서 자기다움을 추구하고 또 추구한 끝에 자기다움이 극대화된 사람’에 대한 질투, 부러움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나도 비슷한 재질인데! 난 그렇게 못 살고 있는데!!!’ 이런 쪼잔한 마음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부럽지가 않어>도 ‘부러워서 만든 노래’처럼 들리는데요. 장기하 씨도 누군가 뭐라도 부러운 사람이 있겠지요? 저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하고 이제는 안정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는 장기하 씨가 부럽습니다. 저도 참고해서 잘해볼게요. 장기하 씨, 언젠가 알고 지내요.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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