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월터의 상상보다 놀라운 현실의 삶에 대하여

by 윤만세

한 발짝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찌질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 찌질함을 애써 감추려는 사람보다 그냥 허허 웃는 사람이 저는 더 좋더라고요. 포장이 얇을수록 멋있어요. 포장지가 얇은 사람은 감싸주고 싶어진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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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월터 미티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경험 한정이지만 ‘월터 미티’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 월터 미티!” 하고 단번에 알아채는 사람은 대단히 드물어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 제목을 말하면 그제야 “아! 월터의 상상··· 그 영화?” 하는 반응이 나오는데. 저는 아무래도 이 한국판 제목은 뭔가 영화를 잘못짚은 느낌을 떨치기가 어렵더라고요. 원제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랍니다. 이 영화는 저의 인생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 속에는 결정적인 두 번의 달리기가 나오는데요. 첫 번째는 월터가 사라진 25번 필름을 찾기 위해 회사 밖으로 뛰쳐나가는 장면이에요.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제 눈에는 정면승부를 위해 자신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어요. 뛰쳐나가는 월터의 뒤로 LIFE 지의 표지들이 지나가는데 마지막에 우주비행사 월터 미티의 사진이 걸려있어요. Space Oddity의 메이저 톰을 연상시켜서 무릎을 탁 치고 말았죠.



두 번째는 월터가 만취한 조종사의 헬기에 올라타는 장면이에요. 이 명장면에서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가 흐르는데요. 월터는 이 곡에 용기를 내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륙하는 헬기에 몸을 던져 올라타죠. 이건 뭐 거의 새로운 세상으로의 탑승이나 다름없어요. 그의 상상보다 더 놀라운 현실이 시작되는 시점이죠. 이 두 번의 달리기 장면 때문인지 제 머릿속에서는 항상 월터 미티가 <Space Oddity> 가사에 등장하는 메이저 톰과 연결돼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메이저 톰.


저는 늘 꿈꾸는 바보로 살고 싶다고 떠들어 왔어요. 현실이 한없이 절망적일지라도 내가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희망을 놓지 않으면 현실은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현실에만 휩쓸려 살아지는 건 내가 생각하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고요. 그건 사실 그런 믿음이 저 자신에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고 새로운 경험을 해야만, 멋진 모험을 떠나야만,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만 잘 사는 건 줄 알았어요. 현실적인 이유로 하고 싶은 만큼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런 경험이 있는 줄조차 모른다면 나는 이미 망한 거 아닌가, 뒤처진 것 아닌가, 슬프고 원망스럽고 불안하기도 했죠.


월터도 어릴 땐 모히칸 헤어를 하고 스케이트보드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던 꿈 많은 소년이었어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가족을 돌보기 위해 모히칸 머리를 밀고 어린 나이에 파파존스에서 일하기 시작한 거죠. 월터가 처음부터 소심하고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예요. 특유의 ‘상상 멍때리기’로 왕재수 구조조정 책임자로부터 ‘우주비행사 톰’이라고 놀림당하지만, 월터는 그 왕재수와는 다르게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는 한 사람의 직업인이잖아요. 그의 직장인 LIFE 지의 모토와 수많은 표지,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와 메이저 톰, 그린란드,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of monsters and man의 음악, 스케이트 보드. 제가 동경하고 꿈꾸던 온갖 것들이 버무려져 월터의 삶에 녹아 있어요.


혼자만의 여행에 늘 함께했던 저의 설거지 솔 '톰'도 <Space Oddity>의 메이저 톰이었어요. 그러고보니 어린 월터와 같은 모히칸 헤어네요.


The Quintesence of life

저는 월터의 ‘삶(LIFE)’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늘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삶,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매일같이 할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삶, 소중한 사람들이 소중히 하는 것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삶. 주목받지 못해도,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사실은 우리 모두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삶. 그런 삶에 대해서요. 평범해 보일지 모르는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하고 싶었어요. 그들이야말로 관심을 바라지 않는 진정 아름다운 사람들 아닐까요. 영화 속의 유령 표범과 월터 미티처럼요.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목적이다.

- LIFE 지 모토


LIFE 지 모토를 넣어 만든 제 폰케이스 좀 보세요 ^^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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