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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Apr 09. 2022

나의 리듬을 찾아서

이랑 : 너의 리듬

제 생각에 저는 아직 저의 리듬을 찾지 못한 것 같아요. 회사에 다니는 저는 항상 바쁘고 처리하지 못한 일을 쌓아두고 있는 사람이라서(제가 정말로 일을 못하는 것인지, 실제로 일손이 부족한 것인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휴일에도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미처 다 읽지 못한 메일을 확인하거나, 다운로드 폴더에 마구잡이로 쌓인 파일을 정리하거나 하면서 ‘다음 주부터는 진짜 더 계획적으로 일해야지!’ 하는 느낌만 가지고 다시 월요일을 맞이하기 일쑤거든요. 그렇다고 말끔하게 뭔가를 처리하는 건 또 아니라서 이번 휴일에는 반드시- 이번 휴일에는 반드시- 하면서 10년 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별로예요.


이번 주말만 해도 그래요. 새로 쓰기 시작한 계획 노트에 적은 투두 리스트만 해도 10개쯤 되는데 지금까지 한 거라고는 영화 <더 배트맨>을 본 것뿐이라니. 겨울옷 정리하기, 서랍 한 칸 정리하기, 안 보는 책 정리하기··· 늘 생각만 하고 절대로 하지 않는 시시콜콜한 것들이 지지난 주부터 투두 리스트에 하나씩 쌓이고 있어요. 저는 정말로 계획적으로 살고 싶은 무계획의 사람인 것일까요.


변명을 하자면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고, 가는 길에는 “와 개나리가 정말 많이 피었구나, 진짜 봄이구나”하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평소보다 얇게 입은 탓인지 영화관이 너무 추운 거예요. 무려 3시간 동안 영화관에서 떨고 나니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이불속으로 당장 들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올해부터는 새사람이 되겠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긴 했습니다. ‘루틴형 인간 되기'로 올해의 목표도 세웠고 1월 중순부터 시작한 아침 루틴을 한 달이나 지속했으니까요. 한 달이라니! 저로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긴 시간이라 이번에야말로 나의 리듬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망했어요.



자신만의 리듬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아무래도 이랑 님의 <너의 리듬>이라는 곡을 만난 즈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홍대 상상마당 2층이 1층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던 시절. 독립출판 마켓이 상상마당 2층에서 열렸는데요. 책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독립 뮤지션들의 CD와 함께 헤드셋이 하나 걸려 있던 전시장 모서리 공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해요. 그곳에서 이 앨범을 만났거든요. 달랑 두 곡 들어 있는 이랑 님의 EP 앨범을. 그 자리에서 두 곡을 다 듣고, 지금 안 사면 다시는 못 들을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CD도 샀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건 저의 완벽한 착각으로 판명되었지만요.


이랑 님을 발견한 현장(출처:타이포그라피서울)과 그때 산 앨범


얼마 전, 이랑 님이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로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발견상'을 받았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올해의 음반', ‘최우수 포크 음반'을 수상했고요. 시상식에서 보여준 이 감탄스러운 무대에서 합창단의 마지막 수어는 "차별 금지법, 지금"이라는 뜻이었대요.


10년 전 제가 이랑 님을 발견했을 때부터 이랑 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의 리듬이 분명한 사람. 살아가다가 맞지 않는 것을 만나면 묻고, 의문을 제기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순간에는 주저 없이 메시지를 던지는 용감한 사람.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는데요.

이랑 님이 그랬어요. 남들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자신은 그냥 말을 할 줄 아는 겁 많고 자주 아픈 한 사람일 뿐이라고. 친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면서 노래하지만, 이런 음악을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빨리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요.


누군가, 조금 무리해서라도 자신의 리듬으로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밝은 것처럼 보이는 나를 내려놓고 묵묵히 깊어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저도 그랬으면 싶어요. 누군가에게 무엇엔가에 기대지 않고 나의 두 발로 섰으면,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유지하고 싶은 리듬을 가졌으면 싶어요.


계속 실패하면서도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게 바로 나의 리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꾸준히 지속하지 못하는 나라도 다시 시작하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이참에 망한 아침 루틴을 다시 시작해 봐야겠어요. 아직 4월이니까 이번에야말로!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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