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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Feb 27. 2022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을 어디까지 움직이게 만들까?

슈퍼소닉 스튜디오 : 유러피안 에코백 아카이브

얼마 전 독립출판 마켓에 구경 갔다가 ‘슈퍼소닉 스튜디오’ 듀오를 알게 됐습니다. 수많은 부스 사이에서 기웃거리던 제 눈에 ‘Supersonic’이라는 글자가 딱 들어온 거였죠. 천천히 다가가서 물어봤어요.


“이름이 왜 슈퍼소닉이에요? 혹시···”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한 분이 펄쩍 뛰며 제 팔을 움켜잡았습니다.

“Oasis 팬이세요????????”

(<슈퍼소닉>은 오아시스의 음악 중에서도 저의 최애곡입니다.)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오아시스의 팬이 분명하다며, 10년 만에 만난 고향 친구처럼 반가워해주셨어요. 초면에 어깨동무하고 사진까지 찍었다니까요.



이분들이 마켓에 들고 나온 <유러피안 에코백 아카이브>는 105일간 여행하면서 모은 67개의 에코백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책이었어요. 서로의 정체성은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고 자랑이 시작됐습니다.


소닉 : 이것 좀 보셔라. 우린 성에서 열리는 노엘 갤러거 콘서트에도 갔었다. 거기서 이 에코백 샀다.
만세 : 대박. 나도 노엘 갤러거 내한은 갔었는데, 오아시스 공연은 못 봤다. 오아시스 공연도 보신 거냐.
소닉 : 당연하다. 지산 락페가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냐.
만세 : 진짜 그때 갔어야 했다. 그럼 혹시 비틀즈도 좋아하시냐.
소닉 : 말해 뭐하냐, 리버풀에도 갔었다. 이것 좀 보셔라. (다른 페이지 펼치는 중···)


유럽에서 만난 음악과 사람들부터, 어린 시절 오랫동안 믿었던 산타를 핀란드에서 만나 펑펑 울었던 일까지. 누군가의 반짝이는 기억은 또 다른 추억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어요. 저는 런던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던 저의 첫 유럽여행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2년, 카우치서핑으로 처음 영국에 갔을 때, 저는 런던 정경대 기숙사에서 오아시스의 <Whatever>를 들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려고 공용 부엌에 가서 습관적으로 라디오 앱을 켰는데 이 곡이 나왔어요. 창문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느끼면서, 저는 시리얼에 우유를 부었죠. 영국에서는 드물게 맑은 아침 날이었어요. 수십 번 들었던 음악인데 그날만큼은 다르게 느껴졌어요. 이층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본 일, 빨간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어본 일, 비가 와도 런더너처럼 우산 없이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던 일,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버스킹을 보며 피시앤칩스를 먹었던 일, 공원 벤치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햇볕을 쬐던 일··· 갑자기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와닿는 거예요. 저는 다름 아닌 오아시스의 나라에 와 있었으니까요.


런던에 올 결심을 한 것도, 첫 서양은 당연히 영국이라고 생각한 것도 모두 오아시스, 콜드플레이, 비틀즈 때문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사람을 어디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걸까요? 그 마음 하나로 비행기 표만 사서 무작정 떠났던 패기는 지금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그때 저는 혼자 여행했기 때문에 톰(이라고 이름 붙인 설거지 솔)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는데요.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그 사진들을 담은 앨범을 매일 배낭에 가지고 다녔어요. 누굴 만날 때마다 주섬주섬 꺼내면서 말했죠. “혹시··· 이거 보실래요?”

(혹시··· 톰의 여행도 보실래요?)




그런데 마침, 런던병의 추억을 불러일으킨 이 듀오의 에코백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전시가 지금 성수동에서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리 연락하고 방문하면 전시장으로 달려와서 직접 설명도 해주신다고 하니. 이번 주말에는 이 전시와 함께 기억 속의 유럽, 혹은 훗날의 유럽 여행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선물 같은 추억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뭔지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몰라요.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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