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도그림 Mar 12. 2016

사과를 먹는 시간

음식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에세이

 M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과일 칸을 여니 오렌지와 바나나 옆에 사과 세 개가 탐스럽게 쌓여있다. M은 수채화처럼 발그레한 사과 하나를 집었다. 톡 소리가 날 듯 단단하고 표면에 꺼슬꺼슬한 윤기가 흐른다. 하루는 반질거리게 익은 사과를 냉장고에서 꺼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말에 시장에 가서 마음에 쏙 드는 놈 7개를 골라 채워두고, 하루에 하나씩 먹는 것이다. M은 흐르는 물에 사과를 씼었다. 찬물이 손가락을 따라 사과를 적시고  뽀독하게 사과는 빛을 더해간다. 그리고 나면 과일칼로 껍질을 깎는 것이다. 얇은 껍질이 벗겨지면 달콤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코끝에 닿는다. 어린 봄빛을 닮은 수줍은 노란빛이 드러난다. 사과, 햇살, 고요함 속의 사각거림만이 거기 있다. 그 텅빈 충만함을 M은 좋아한다. 천천히, 아침 의식처럼 사과를 깎다보면 잠겨있던 정신도 밝아온다. 

 



 오늘은 간단한 사과 샌드위치를 만들 것이다. 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계란 하나를 후라이한다. 계란에는 버섯과 당근을 송송 썰어 넣는다. 노릇한 빵냄새가 풍길때 쯤, 빵을 꺼내고 그 위에 치즈를 바른다. 빵 위에 후라이를 올리고, 토마토로 한 층을 더 올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얇게 썰은 사과로 네모난 공간을 속속이 채우면, 완성이다. 건강하고 든든한 한끼. 사과가 달콤하고, 토마토와 함께 씹힐 때 신선함을 안겨주면서, 치즈의 부드러움, 빵의 고소함, 그리고 계란의 포들거리는 식감이 입 안에서 조화롭다. 한동안 식탁은 오물거리는 소리 뿐이다. 오물거리다가,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우유나 커피나 오렌지주스를 홀짝이다가, 다시 아삭, 오물오물. M의 하루 중 고요하고 반짝이는 시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