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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Mar 19. 2016

커피와 머핀

아침을 깨우는 향기

두우우우. 아침의 적막 속에 원두 가는 소리만 조용히 울린다. 조금 기다리니 흰 머그컵에 초콜릿 색 커피가 쪼르르 담긴다. 은은하게  코를 맴도는 동그랗고 부드러운 향기. 머그컵을 쥔 손은 점점 따뜻해진다. L은 커피를 내리는 고요한 아침 시간을 좋아한다. 목이 둥글게 파인 헐렁하고 부드러운 티셔츠와 편한 라운지 바지를 입고, 커피머신 앞에 서 있는 시간. 누르스름하고 멍한 정신을 짙고도 달콤한 향이 감쌀 때,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뭉클함이 L의 마음 속에 번진다.

 L은 냉장고에서 며칠 전 사둔 블루베리 머핀을 꺼냈다. 하얗고 둥근 자기 접시에 머핀을 담아 전자레인지 용 뚜껑을 덮고 돌렸다. 꺼내니 달고 부드러운 빵집의 향기가 구름처럼 깔린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따뜻하다. L은 커피와 머핀을 가지고 창 밖이 내다보이는 네모난 이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창밖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난 좁은 산책로, 이웃집의 옆모습이 보인다. 추웠던 겨울,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군지는 꽤나 되었지만 오늘의 햇살은 벗은 나무에 유독 보드랍게 내리는 것 같다. 옆집은 말없이 잠들어 있다. L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에 코를 살며시 대고 있다가 살짝 홀짝여 본다. 씁쓸함이 뜨거움에, 뜨거움이 씁쓸함에 묻혀 혀 끝에서 입 안을 지나 목으로 천천히 넘어간다. L은 한동안 바깥 풍경을 보다가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들이쉰다. 공기는 잠잠하고 시원하지만 차갑지 않다.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다. 하늘은 뿌연 푸른 빛에 흰 구름이 멀리 드문드문 걸렸다. L은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식빵용 나이프로 머핀을 한 입만큼 잘라 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바스라지는 빵, 꿈 속 같이 몽실몽실한 향기, 거기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조금 들이키니 달콤씁슬한 뒤섞임이 즐겁다. L은 한동안 커피를 홀짝이고 머핀을 오물거리고, 밖을 바라보며 생각이 잠의 이불에서 나와 꾸물거리도록 내버려두었다가, 또 한 입 더 먹었다.
  



 L이 매일 아침 머핀을 먹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날은 에그 베이컨 토스트를 해 먹기도 하고, 어느날은 사과와 각종 베리에다 요거트, 시리얼을 먹기도 했다. 어쩔 때는 지난 밤에 준비해놓은 재료로 또띠아를 만들어 먹기도 했고, 언제는 든든한 비빔밥 한 그릇이었다. 어찌되었든 L에게 아침은 중요했다. 햇살이 비추고 몸과 마음이 깨어나고 에너지가 차오르는 시간이었다.

 머핀을 다 먹고 커피를 한 잔 더 내려 마시다가 L은 플래너를 넘겨 오늘의 페이지로 펼쳤다. 오늘은 낮에 친구와 만나 연희동을 산책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찾은 맛있는 샐러드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샐러드를 먹어 볼 예정이다. 그리고 카페에 앉아 사는 이야기, 좋은 책과 글, 예술과 전시 이야기를 하겠지. 만나기 전보다 서로가 조금 더 맑아질 것이다. 들꽃같이 빛나고 옥처럼 단단한 내 친구. L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빈 접시를 싱크대에 넣고, 깨어난 발걸음으로,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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