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험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도그림 Nov 08. 2024

두 가지 자화상

자화상 01


어느날 cd 한 장이 집에 왔다. 갓 구운 cd 은색 반사면에 네임펜으로 2008.08.12, 영상의학과 라고 흘려 적혀있다.

“걱정할 거 없어. 아무 문제 없어. 아주 아인슈타인 브레인이야.”

나는 cd를 컴퓨터에 넣는다. 윙- 소리를 내며 컴퓨터는 이미지를 재생한다.


흑백의 단면도. 창자같이 구불구불한 뇌. 어두운 면과 빛이 투과되어 하얗고 밝은 면이 있다. 나의 머리를 세로로 자르면 보일 모습이다. 머리를 가르는 상상을 해본다.

 마우스 커서로 이곳 저곳을 클릭해본다. 이미지를 확대하고 축소한다.

“여기가 뇌하수체고 여기가 전두엽. 여기서부터 1번 신경이 척추랑 연결되어 있어.”


나는 이 기이한 자화상을 본다. MRI 기계가 몇 분 사이에 만들어 준 이미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과 전파로 내 몸을 동강 동강 자르면서. 하나도 아프지 않게 도로 붙여 놓으면서.

마음에 든다, 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화상 02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몰라.

네 아름다움은 너의 삼차원성에 있어.

아무리 거울을 보아도 사진을, 동영상을 찍어도 너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는 바로 그 입체감.”

나는 한 손가락으로 내 이마에서부터 턱까지 윤곽을 따라 내려간다.

“내가 너 이외의 모든 이들의 시각을 대변해볼게. 장담하는데, 너의 매력은 네 입체감에 있어. 자신감을 가져. 지금 네가 가진 기술로는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너는 정말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니까.”


K의 말에 나는 화를 낸다. 억울하다고 말한다.

“나는 이 몸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데 왜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지?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 볼 수 있잖아. 근데 왜 이 얼굴에 영향을 받아야 할 나는 막상 나 자신을 평면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거야?”



내 오랜 칭얼거림에 어느날 K는 망원경처럼 생긴 장치를 가져온다. 스테레오스코프- 라고 불렀던 것 같다.

“일단은 이걸로 만족해. 다음에 더 좋은 장비를 구해올테니까.”

K는 사진 두 장을 찍어서 각각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넣는다. 구멍을 들여다보더니, 그래, 하면서 장치를 나에게 건넨다.

나는 눈을 가져다 댄다. 방금 찍은 사진이 보이는데, 매직아이를 하는 것처럼 이미지가 튀어나오고 꺼져있다. 배경은 뒤로 물러나 있고 볼과 코는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어색하다. 나는 한번도 이런 내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와 닮은 한 사람이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지금 K의 눈에는 내가 이렇게 보이는 걸까?

K는 다음에 3D카메라를 가져오겠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무섭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촉감의 요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