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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Sep 19. 2020

촉감의 요정

촉각에 대하여

   지난 밤에 꿈을 꿨다.



   잔잔한 빛이 일렁이는 홀, 나는 풍경이 내어다보이는 큰 유리창 앞에 서 있다. 멀리서 개 한마리가 대리석 바닥에 발톱 닿는 소리를 내며 총총총 걸어온다. 검고 흰 털에 윤기가 흐르는, 깔끔하고 도도한 보더콜리다. 개는 내 앞으로 와서 창 밖을 향해 앉는다. 한동안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본 채 말이 없다.

   얼마 뒤 아이들 둘이 나타난다. "어! 강아지다!" 하며 달려와 보더콜리의 털을 쓰다듬는다. 아이들은 해맑고 짖궂은 표정으로 멍멍아, 멍멍아, 하며 이리 저리 폴짝인다. 개는 여전히 눈동자를 멀리 둔 채로 가만히 있다. 가끔 귀를 쫑긋 세웠다 서서히 내려놓는다. 얼마 뒤 아이들은 떠난다. 나는 개를 새삼스레 내려다본다. 그리고 한 두 걸음 걸어가 개 옆에 쪼그려 앉는다.

   내 손가락이 개의 등을 빗질하듯 내려간다. 쓰다듬고, 두드리고, 긁듯이 머리를 만져주고, 보더콜리는 나를 향해 꼬리친다. 부드럽다. 나는 두 팔로 보더콜리의 몸통을 안는다. 털의 따뜻함이 가슴에 와 닿는다. 보더콜리는 앞다리를 가볍게 들었다 내린다.


   꿈 속이었고, 나는 이 개가 촉감의 요정임을 알았다. 나는 이 요정의 배를 만지고 툭툭 장난치고 옹알옹알 온갖 귀여운 말들을 했다. 요정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다리를 옆으로 뻗고 기분좋아라 발길질 한다. 히히히, 나는 입꼬리로 웃음의 모양을 지으며 한동안 손으로 팔로 쓰다듬는다. 피부에 닿는 털의 감촉 뿐, 그 순간 내 존재의 전부는 그뿐이다.  

   꿈은 점점 소용돌이 치고, 휘몰리고, 안개가 끼고, 그리하여 경계없는 그 공간을 짙어진 감각이 전부 메웠다.


   그 때 개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덥석, 내 팔목을 문다. 으악- 하고 나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른다. 흰 팔에 이빨 자국이 패였다. 그 자리에서 붉은 피가 베어나온다. 나는 손으로 피를 훔친다. 닦아내기 무섭게 더 빨리 차오른다. 욱신거린다. 팔목과 통증으로, 그 아우성으로 전신이 먹먹하다. 온 신경이 곤두선다. 나는 그 고통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내 촉각의 역사에 이 순간은 문진처럼 흉질 것이다.



   잠이 깬다.

   손끝으로 팔목을 어르어 본다. 아무것도 없다. 손에 닿는 피부결의 느낌은 곧 잊혀진다.


   내 옆에 한 이가 누워있다. 깊은 숨소리를 내며, 잠 속이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본다

   으음, 하며 그는 뒤척이고 몸의 각도가 살짝 틀어진다. 그의 왼팔에 양 팔을 감는다. 꾸물꾸물 움직여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본다. 따뜻하다, 따뜻함이 배어온다. 나는 몸을 더 가까이 붙인다.


   기억의 저편에서 개 한마리가 꼬리를 친다.




Jan Brueghel the Elder < Touch  >



Rembrandt < Tou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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