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사전
지난 밤, 서재에서 면은 앨범 한 권을 발견했다. 금박을 입힌 고풍스런 표지에는 얇은 글씨로 <얼굴의 카탈로그>라고 쓰여 있었다. 면은 페이지를 넘겨 보았다.
그 책은 세 사람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땅딸막하고 아랫배가 불룩 나온 한 남자. 그의 두 눈은 사팔뜨기처럼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고 뾰족한 송곳니와 삐뚤게 난 이빨은 어떤 장난끼와 불평과 시끄러움을 연상시켰다. 그는 소년이라면 소년, 이제 중년에 접어들었다면 어수룩한 중년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사진을 여섯 장 넣을 수 있는 앨범 페이지의 첫 번째 칸마다 그의 모습이 있었다. 그 옆은 부슬거리는 파마머리를 어깨 길이로 늘어뜨린 젊은 여자의 자리였다. 그녀의 눈썹은 흐릿하고 눈꼬리는 쳐져 졸리고 기운 없는 인상을 주었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목까지 잠가 짧은 목이 더 없는 듯 보였다.
마지막 칸에는 낯짝이 보통 사람보다 서너 배는 두꺼워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질긴 살가죽에 가위로 이목구비를 뚫어 넣은 것 같았다. 거친 피부도, 짙은 눈과 입술도 부리부리하고 강렬했다. 그 사람은 사진마다 다른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겉치레 뒤로 흐릿한 점 같은 내면을, 본인 조차도 있는지 몰라 하는 속내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세 인물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쓰도록 하자. 더는 묘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 이 세 사람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주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해 주었으나,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표정편’ 이라는 부제를 단 이 <얼굴의 카탈로그> 각 페이지에서 이들은 동일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컨대 ‘웃음기 없이 진지하고 당당하게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표정’이라고 면이 이름을 붙여본 페이지에서, 세 사람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부릅뜬 눈, 끝보다 가운데가 조금 더 위로 올라간 눈썹, 목소리가 나오는 중인 듯 벌어진 입술, 딱딱하게 경직된 얼굴 근육, 표정과 마주한 상대를 순간 움츠러들게 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낯빛을 하고 있었다.
1번부터 번호가 매겨진 각 페이지에는 세 사람의 사진과 번호뿐 어떤 서술도 없었다. 이 표정과 저 표정은 달랐지만 그 아래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흐르고 있는지 설명해내기는 어려웠다. ‘불만과 짜증이 뒤섞인, 건드리면 곧장 찡찡거리기 시작할 것 같은 얼굴’이라고 면이 불렀던 1077번을 끝으로 더 이상의 사진은 없었다.
<이것으로 모든 분류는 끝났다. 나는 이를 넘어서는 어떤 표정도 보지 못했다. 당신이 짓는 모든 표정, 당신의 의식이 얼굴에 드러나는 모든 방식이 이 안에 있다.>
면은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고 코 볼을 줄어들게 하고 입 꼬리를 살짝 내린 채 인상을 썼다. 그것은 261번째 표정이었다. 면은 눈을 살짝 가늘게 하고 입술을 일자로 다문 채 코웃음을 쳤다. 473번째 페이지에서 세 인물이 그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면은 자신의 얼굴에 매 순간 익명적인 것의 베일이 씌워져 있고 어떤 때에도 -눈을 감고 고요하게 깊은 잠이 든 815번째 상태에도- 그 베일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음을 느끼고 흠칫했다. 인간 종과 공유하는 이 표정이라는 것,
면은 문득 다른 이의 얼굴을 보기가 무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