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도그림 Sep 20. 2022

한국음식의 미의식을 찾아서

설렁탕의 맛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뚝배기 그릇, 담겨서도 여전히 끓고 있는 흰 국물, 물에 잠긴 얇은 쇠고기, 젓가락으로 휘- 저으면 감겨오는 흰 소면. 오늘 내 앞으로 설렁탕이 나왔다.

   우선 후후 불어 국물 한 입을 뜬다. 삼삼하고 은은하다. 뼈에서 고아 나온 육수는 우유와 크림 사이 그 무엇인듯 부드럽다. 대파를 가득 넣으니 녹색과 흰색의 동그라미들이 국물에 풀어진다. 뽀얀 물 속에 잠겨있는 밥과 소면을 뜨고, 파와 양지를 얹어 한 입에 넣는다. 크게 썬 깍두기도 함께 씹는다. 식을수록 국물의 농도는 짙어지고, 이 수저와 다음 수저, 이 한 입과 다음 한 입 간의 맛이 달라진다. 붉은 김치가 흰 색채를 물들일수록 요리의 맛은 심화된다.

   설렁탕 집 실내를 둘러본다. 사람들은 모두 검은 뚝배기에 코를 넣을 듯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여, 활처럼 곡선처럼 요리와 한 쌍이 되어 있다. 그릇 위에 떠오른 얼굴은 수증기에 젖어 촉촉해지고 국물은 입 안과 혀, 목구멍을 적셔 천천히 몸을 덮혀온다.


   우윳빛 비단 혹은 비단빛 우유 같은 육수와 부드럽게 삶은 양지 쇠고기, 아삭이고 어석거리고 달콤 짭조름하게 절여진 김치로 이루어진 설렁탕은 꽤나 단순해 보인다. 그렇다지만 국물의 깊이와 농도는 어떻게 낼 것인가? 몸에 국물을 밴듯, 국물과 함께 만들어진 듯, 영양과 담백함을 담당하는 양지 수육은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국에 감칠맛과 식감을 더할 최상 궁합의 김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 사골 육수와 고기는 끓는 시간을 달리해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고 한다, 너무 오래 고아 비린맛이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한다, 감칠맛을 내는 올레인산이 많이 함유된 고기를 써야 한다고 한다 —

   육수가 끓는 시간, 고기가 삶아지는 시간, 김치가 익는 시간이 한 그릇을 이루었다. 늙고 원숙한 재료들은 서로가 서로에 베어들 줄, 함께 머물 줄, 조화로울 줄 안다. 오늘 이 식당에서, 설렁탕에 담긴 시간을 먹는다.



   설렁탕의 맛에서 나는 무언가 찾으려 한다. 이 맛과 미감이 말해주는 바를 가늠해보고 싶어한다. 나처럼 이러한 식사를 했던 활의 몸들이 공유하는 무언가 말이다. 설렁탕을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희고 숭숭한 국물을 마실 때, 밥알을 씹을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 그 익숙함과 즐거움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까? 재료들이 설렁탕이라는 요리로서 결합될 때까지 그 바탕에는 어떠한 환경과 역사와 미의식이 있었는가?

   그러니까 한국음식을 특정 자연 환경, 물질적 조건, 풍습, 철학, 정서적, 정신적 가치들이 배태한 실용적이고 미적인 결과물로 보는 것이다. 음식에는 특수한 삶의 환경이 응축되어 있고 신체적, 정서적, 미적 필요를 고려해 형성된 총체적인 세계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음식은 먹는 이에게 즐거움과 더불어 어떤 미적 감각들을 불러일으키고, 이 감각은 수렴되는 여러 중심점들을 갖는다. 이 중심점을 한국 식문화의 미의식이라고 개념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데 한국음식은 한국인들의 미의식의 표현체이다.


   그리하여 나는 독해해보려고 한다. 음식에서 사람, 사회, 문화를 읽어내기. 혀끝의 맛들을 따라가 이 추상화된 징후의 배후에 있는 미적인 것(aesthetics)의 이야기에 도달하기. 문명은 사라지고 요리만이 남았을 때, 이 맛만으로서 '한국인'들은 어떻게 기억될까?




표지 사진 출처: SSG.com (재편집)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