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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Jan 24. 2017

[01] 그림을 감상하는 법

미술에게 말 걸기. 내 눈으로 감상하기.

"뭘 어떻게 봐야 하는거지?"


 미술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거대한 물음표를 품고 다녔다. 매력적인 색채와 형태로 이야기하는 그림들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명화를 설명해 놓은 책들, 그림에 대한 에세이와 비평들, 전시 도록들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그림을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설명을 읽으면 전에는 대강 보고 지나쳤을 그림에서 특징과 매력들느껴졌다. 알고 보면 다들 나름대로 대단하고 독창적인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감상법은 뭔가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나는 풍부하고 감각적인 형상, 색채, 질감을 가진 미술작품 자체를 즐기고 싶었는데 그 대신 작품을 언어로 환원시켜놓은 후 설명의 프레임에 걸러지는 일부만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작품 자체'를 제대로 느끼고 작품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여러 시도를 해보며 이 질문에  답해나갔다. 이제 작품 감상에 대한 감을 조금 잡은 것 같다. 여기서 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술관을 가는 것도 좋아하고 미술 작품이 흥미롭기는 한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 현대미술은 배보다 배꼽이 큰 거짓말같다고 느끼는 사람들, 스스로의 눈으로 작품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은 그림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면 계속 읽어나가길!  




보고 느껴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이다. 너무 뻔하고 간단해서 무용해 보이는 말이지만 모든 감상법의 근본이자 핵심은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내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술 자체가 감각적인 자극, 경험, 충격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활동이다. 그러니 스스로 그 감각 경험을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인상을 받는 것 이외에 어떤 감상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말은 정말이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잘 보고 잘 느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1. 오랜 시간, 주의 깊게 보아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보아야 한다.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어떤 소재들이 등장하는지, 어떤 색깔을 써서 표현했는지,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재료는 무엇을 사용했는지, 질감 표현은 어떻게 했는지, 작품으 크기는 어떤지, 인물이 어떤 동작을 취하고 있는지, 인물의 표정은 어떠한지, 빛의 사용은 어떠한지 등을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회화라면 가까이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조각이라면 정면, 위, 아래, 뒤에서, 설치 예술이라면 작품을 사방에서 감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그림이 자신의 감각에 즉각적이고 일방적으로 호소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정말 충격적이어서 보는 즉시 감흥을 일으키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작품의 비밀을 벗겨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렇게 질문하고 답하다보면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인상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까미유 끌로델 <수다쟁이들 Les causeuse/ Les bavards> 1897, marbre, onyx, bronze s1006

© Adagp, Paris 2013


여자들이 수다떠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다. 생생한 입모양, 이야기꾼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자세와 구도, 벽이 주는 비밀스러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2. 상상하고 가정하면서 보아라.


 제대로 보도록 도와주는 또 다른 팁은 상상하고 가정하는 것이다. 작품이 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인물의 얼굴을 파란색으로 칠한 그림이 있다면, '만약 이 얼굴이 빨간색이었다면, 노란색이었다면, 흰색이었다면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왜 굳이 파란색을 선택했을지, 그것이 이 그림만의 독특한 느낌을 형성하는데 어떻게 기여했을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거친 필선이 아니라 가는 필선이었다면, 크기가 3배로 크거나 5배로 작았다면, 철이 아니라 비누를 사용했더라면, 배치가 달라졌더라면, 빛이 위에서 들어왔더라면, 캔버스가 아니라 자수로 만들어졌더라면... 등의 질문이 가능하다.

 앞서 말했듯이 예술은 결국 그 자체의 감각적 언어와 생생한 체험으로 어떤 주장을 전달한다. 결국 예술 작품의 재료, 색채, 구성, 제재, 크기, 질감, 빛의 사용, 표현 방법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자 유일한 것이고 모든 의미는 여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정하고 상상하는 감상법은 이러한 특성들에 주목하게 해서 작품을 더 명확하게 느끼고 그 인상의 근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치균 <Last winter>, 1995, Acrylic on Canvas, 71 x 61cm


오치균 작가는 물감을 붓이 아닌 손으로 찍어 바르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작품에 어떤 효과를 주는가? 붓으로 칠했다면 어떤 느낌을 주었을까?




Jackson Pollack, <Unformed Figure>, 1953, oil and enamel on canvas, 52 inches x 6 feet 5 inches

이 작품에 흰색이 더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분홍색과 노란색 대신 초록색과 파란색이 쓰였다면 어땠을까?





3. 비교하면서 보아라.


 작품을 유사한 주제를 다루거나 같은 제재를 사용하거나 비슷한 시대에 있는 작품과 비교해보면 해당 작품의 특징과 가치를 더 두드러지게 잡아낼 수 있다. 혹은 한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해당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껴야 한다!



Salvador Dali <The Temptation Of St. Anthony>, 1946, oil on canvas, 119.5 x 89.7 cm


Paul Delvaux, <The Canape Vert>, 1944, 130 x 210 cm


Vladimir Kush, <Sunrise by the Ocean>, 2000, 21" x 24"


같은 초현실주의 화풍이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른 내용을 그렸다. 초현실주의에 대해 공부하고 한 작가의 여러 작품간, 작가들간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훨씬 더 풍부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4. 설명을 들어라.


 3번까지 단계를 밟으며 그림을 감상한다면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느낌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제 다 됬다며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읽거나 들으면 작품 자체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작품에 내포된 상징, 작품의 미술사적 가치, 작가의 의도, 화가나 사조에 대한 설명, 다른 비평가들이 작품을 본 방식 등을 알 수 있다. 이를 참고해 다시 작품을 감상한다면 더 넓고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작가의 입장이나 미술사가의 해석이 가장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품 감상을 위한 참고 자료로써는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미술관에 있다면 작품 옆에 있는 설명을 읽거나, 오디오 가이드, 도슨트 투어를 활용할 수 있다. 전시 도록이나  참고 서적과 영상을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만의 감상을 하고나서 이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작품 자체를 자신의 눈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제대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술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는 있지만 오락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활동이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를 이런 단계들을 밟아 감상해나간다면 예술을 보는 감식안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보고, 느끼는 것'이다. 이를 잘 행하기 위해서 앞서 이야기한 의식적인 단계들이 필요하지만, 이것에 압도되어서 몸이 작품을 생생하게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작품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일 것이다.

 다음번에 미술관에 갈 때는 이 방법으로 전시를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미술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건 이전처럼 예술작품이 고고하고 접근하지 못할 존재여서가 아니라, 다가가서 소통을 시도해야 하는 타자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제 작품에 다가가 말을 걸어보자. 주의 깊게 살펴보고 느껴보자. "너는 어떤 존재니?"   





표지그림- Jean-Philippe Delhomme <New york travel book: Resnick painting at Cheim & Read Gallery, Chel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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