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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Sep 11. 2019

걷기에 대한 소고

밖, 우리에게 밖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그는 어둑한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마치 잠시라도 서 있으면 기다리고 있던 무언가가 뒤에서 그를 잡아챌 것 같아 두려웠고, 등 돌리고자 열망했던 곳에 도착하는 것이 두려웠다.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중-






 걷기를 좋아하고 줄곧 걷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한 동인이 근래 들어 저에게 선명해지기 시작했어요. 바로 걷기가, 제 앞에 자욱이 깔려 곧 저를 짓누를 것 같은, 때때로 찾아오는 그 시간들을 가장 건강하게 횡단하는 방법이라는 거에요. 뒤엉킨 뾰족한 감정들, 저를 내리누르는 우울, 의심, 터질 조짐이 보이는 충동들 – ‘그것’이 오고 있음을 직감할 때 저는 일단 서둘러 신발끈을 묶고 밖으로 나갑니다.




 밖, 우리에게 밖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저는 언제든 관성적인 지속을 끊고 집으로부터 밖으로, 제 안의 밀실로부터 바람이 불고 공기가 흐르는 길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거리에서의 들이쉼, 그리고 내쉼, 이동하는 발, 질주하고 부딪히고 제자리걸음하고 잠잠해지는 의식, 창처럼 풍경을 통과시키는 두 눈. 이렇게 한 바탕 전투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잦아들 때면 뿌옇고 메케하기까지 했던 저의 폐는 어느 새 맑은 기운을 호흡하고 있습니다. 공기 중에는 아이디어들이 홑씨처럼 흩어있고 제 손은 메모하기 바쁩니다.



 저에게 걷기란 우선적으로 이런 것입니다.
 제 눈은 내면으로 침잠해 있고 중단 없는 걸음은 시간의 속도와 발맞추기 위함일 뿐입니다.
 이 걷기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산책이나 산보보다는...




 낮과 밤의 경계선에 서서 저무는 태양을 뒤쫓는, 혹은 엄습하는 어둠에서 도망치는 형상입니다.
 애처로운 모양새는 아니에요. 결국 멈추어 섰을 때 저는 노곤하거나 지펴졌거나 혹은 둘 다 이거나 해서 미소하고 잔잔한 즐거움에 젖어 마침표를 찍고 다시 저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것은 명상? 기도?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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