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활 소묘

그다지 발랄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오늘의 걸음을 부단히 옮기는 사람들

by 지도그림

2018년 한국의 단면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도시 서울.

북적이는 지하철이나 공사 소음까지도 일상이 되어 친근해진 곳. 이 대도시와 그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보들레르가 <현대 생활의 화가>에서 현대적 예술가의 역할로서 옹호했듯, 도처에 있는 "생활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삶을 실시간으로 포착한 소묘"이자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시적인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던 중 미술사가 최순우 씨의 글을 읽었다. 반 세기 전 즈음의 한국에 대한 묘사였는데 탁월한 문장력에도 눈이 갔지만 무엇보다 그가 쓴 한국이 지금과 너무도 다르다는 점에 놀랐다. 같은 공간과 같은 한국인에 대한 서술 같지가 않았다. 여기에 그의 글과 그가 염두해 두었던 한국의 그림들,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적어 본 현대 서울에 대한 내 글과 오늘날의 삶을 표현한 동시대 회화를 병치해보고자 한다. 그 간극이 흥미롭다.





먼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우리의 미술>에 나오는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모여서 돋아난 의좋은 초가 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 줄 때가 있다.


박수근 <춘일>
박수근 <귀로>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도리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 가면서 순박하게 살아 왔다.


장욱진 <길 위의 자화상>

한국의 미술, 이것은 이러한 한국 강산의 마음씨에서 그리고 이 강산의 몸짓 속에서 몸을 벗어날 수는 없다. 쌓이고 쌓인 조상들의 긴 옛 이야기와도 같은 것, 그리고 우리의 한숨과 웃음이 뒤섞인 한반도의 표정 같은 것, 마치 묵은 솔밭에서 송이버섯들이 예사로 돋아나듯이 이 땅 위에 예사로 돋아난 조촐한 버섯들, 한국의 미술은 이처럼 한국의 마음씨와 몸짓을 너무나 잘 닮고 있다. "



이중섭 <닭과 가족>






비슷한 형식으로 써 본 현대 서울에 대한 묘사이다.



내리는 밤 비행기에서 남기고 떠났던 땅을 굽어볼 때면 어둠을 밝히는 노랗고 하얀 불빛과 그 빼곡함에 서울에 돌아왔음을 느끼곤 한다. 밤 늦게까지 불을 밝힌 빌딩과 상가들, 각잡힌 새 넥타이처럼 위엄있게 솟은 유리와 콘크리트 고층건물들, 부동산업자, 건설사, 투자자들의 미소처럼 곧추 선 아파트와 오피스텔, 전봇대처럼 말 없는 플라타너스가 역동적인 도시 서울의 파사드이다.


함명수 <City Scape>
함명수 <City Scape>


흐르는 빛물처럼 차들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달리고, 그다지 발랄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오늘의 걸음을 부단히 옮기는 사람들이 그림처럼 풍경 속에 늘 있다. 이 모든 빛을 밝히는 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불씨이다. 꺼지지 않는 도시, 가량가량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가 열기 속에 포효하고 질주하는 거친 맹수였다가, 사람과 삶이 복닥이는 현장이었다가.


권인경 <공존>


권인경 <내부자의 풍경>


빗소리에 번지는 구두 소리와 물 튀기는 소리, 잔 부딪치는 소리, 흥성이고 웃는 소리 그리고 밤 공기가 누릇하게 머금은 전 부치고 고기 굽는 냄새로 기억되는 곳, 우리 서울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눈을 뜨고 움직이며 빽빽하게 살아왔다.






‘버섯같은’, ‘순박한’, ‘흙이 되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이라는 수식어가 수십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을 꾸밀 수 있는 말들이었다니. 지금은 어느 하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몇 십년 뒤 지금의 수식들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


앞으로도 계속 서울과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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