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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Mar 26. 2018

서울 생활 소묘

그다지 발랄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오늘의 걸음을 부단히 옮기는 사람들

 2018년 한국의 단면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도시 서울.

 북적이는 지하철이나 공사 소음까지도 일상이 되어 친근해진 곳. 이 대도시와 그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보들레르가 <현대 생활의 화가>에서 현대적 예술가의 역할로서 옹호했듯, 도처에 있는 "생활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삶을 실시간으로 포착한 소묘"이자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시적인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던 중 미술사가 최순우 씨의 글을 읽었다. 반 세기 전 즈음의 한국에 대한 묘사였는데 탁월한 문장력에도 눈이 갔지만 무엇보다 그가 쓴 한국이 지금과 너무도 다르다는 점에 놀랐다. 같은 공간과 같은 한국인에 대한 서술 같지가 않았다. 여기에 그의 글과 그가 염두해 두었던 한국의 그림들,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적어 본 현대 서울에 대한 내 글과 오늘날의 삶을 표현한 동시대 회화를 병치해보고자 한다. 그 간극이 흥미롭다.





 먼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우리의 미술>에 나오는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모여서 돋아난 의좋은 초가 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 줄 때가 있다.


박수근 <춘일>
박수근 <귀로>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도리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 가면서 순박하게 살아 왔다.


장욱진 <길 위의 자화상>

 

한국의 미술, 이것은 이러한 한국 강산의 마음씨에서 그리고 이 강산의 몸짓 속에서 몸을 벗어날 수는 없다. 쌓이고 쌓인 조상들의 긴 옛 이야기와도 같은 것, 그리고 우리의 한숨과 웃음이 뒤섞인 한반도의 표정 같은 것, 마치 묵은 솔밭에서 송이버섯들이 예사로 돋아나듯이 이 땅 위에 예사로 돋아난 조촐한 버섯들, 한국의 미술은 이처럼 한국의 마음씨와 몸짓을 너무나 잘 닮고 있다. "



이중섭 <닭과 가족>






 비슷한 형식으로 써 본 현대 서울에 대한 묘사이다.



 내리는 밤 비행기에서 남기고 떠났던 땅을 굽어볼 때면 어둠을 밝히는 노랗고 하얀 불빛과 그 빼곡함에 서울에 돌아왔음을 느끼곤 한다. 밤 늦게까지 불을 밝힌 빌딩과 상가들, 각잡힌 새 넥타이처럼 위엄있게 솟은 유리와 콘크리트 고층건물들, 부동산업자, 건설사, 투자자들의 미소처럼 곧추 선 아파트와 오피스텔, 전봇대처럼 말 없는 플라타너스가 역동적인 도시 서울의 파사드이다.  


함명수 <City Scape>
함명수 <City Scape>


흐르는 빛물처럼 차들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달리고, 그다지 발랄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게 오늘의 걸음을 부단히 옮기는 사람들이 그림처럼 풍경 속에 늘 있다. 이 모든 빛을 밝히는 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불씨이다. 꺼지지 않는 도시, 가량가량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가 열기 속에 포효하고 질주하는 거친 맹수였다가, 사람과 삶이 복닥이는 현장이었다가.


권인경 <공존>


권인경 <내부자의 풍경>


빗소리에 번지는 구두 소리와 물 튀기는 소리, 잔 부딪치는 소리, 흥성이고 웃는 소리 그리고 밤 공기가 누릇하게 머금은 전 부치고 고기 굽는 냄새로 기억되는 곳, 우리 서울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눈을 뜨고 움직이며 빽빽하게 살아왔다.






 ‘버섯같은’, ‘순박한’, ‘흙이 되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이라는 수식어가 수십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을 꾸밀 수 있는 말들이었다니. 지금은 어느 하나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몇 십년 뒤 지금의 수식들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해진다.


 앞으로도 계속 서울과 사람들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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