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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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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Mar 23. 2020

웃음을 통한 교란

이민선 개인전 <필사의 유머>


 가만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온다. 어이가 없는데 좀 웃기다. 그런데 웃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걸리는 게 있다. 가만히 서서 생각해보니 곱씹을수록 더 복잡해진다.


<<필사의 유머>> 에서 이민선의 작업의 핵심은 말과 글, 즉 언어적 요소에 있다. <A라는 이야기>는 벽에 붙은 짧은 텍스트가 작업의 전부이고 <사오정은 점점 미안해졌다> 에서도 비록 사막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만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건 낱장의 종이에 쓰인 토끼와 거북이의 대화에서 비롯된다.


 <사오정은 점점 미안해졌다>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대화는 승리와 패배라는 주제를 화두로 던진다. ‘내가 이기고 너가 지는 경기만 하겠어, 왜냐면 나는 이기고 싶으니까’ 하는 토끼의 고집은, 이미 특정인이 승리하게 설계된 경기에서 이긴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지는 게 어때서?/ 지는 게 좀 그래. 기분이.” 경기가 발생하고 승패에 집착하게 하는 근본적인 동력이 기분의 좋고 나쁨일 뿐이라면, 경기에 그만큼의 시간과 감정을 투자한 가치가 있는가? 이 기분 좋음이 그 만큼의 의미가 있는 좋음인가? 대화를 읽으면서 튀어 나오는 헛웃음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뿐만이 아니라, 생애주기 별로 고집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일상적인 경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이민선의 작업을 특징짓는 유머는 일상의 뒤편에서 작동 중에 잇는 통념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 통상적인 관념들의 외관은 견고하고 근엄하기는커녕 다소 어설프고 우스꽝스럽다. 웃음에는 이들의 허술함을 인식했음이, 그리고 이에 동의하지 않음이 함축되어 있다. 일시적으로나마, 웃음은 균열을 일으킨다.



 한편 전시장 끄트머리 구석진 방에서는 어딘가에서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클래식이 반복된다. 짧은 콩트로 이루어진 영상작업 <귀신은 만득이의 개명소식을 전해들었다>의 엔딩 음악이다. “이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는 이 작업 또한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너무도 당연한 말들, 다소 새삼스러운 금언과 철학적인 물음이 진지한 표정과 긴 엔딩 크레딧을 통해 의미심장하게 포장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름을 남기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름이 없다면 사람들은 저를 부를 수 없을까요? 하지만 제 이름에 앞서 저는 존재합니다.”

비웃으며 흩날려버린 대사들과 장면들은 어느덧 질문이 되어 마음 한 켠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꽤나 지독하게 잔여하여 ‘이름이란 무엇인가, 내 이름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호칭이 관계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총 네 작업이 각각의 공간에 배치되고 상연된다. 승패, 이름, 소개팅에 대해 이야기하는 각 작업들은 모두 유머를 통해, 통상적으로 큰 고민 없이 사용되는 말과 관념들을 재조명한다. 이들은 유아론적인 자아가 타자들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상태로 나아갈 때, 관계와 의사소통의 장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때 발생하는 상황들에 주목하게 한다. 헛웃으며 이를 되짚다 보면 묘한 불가해함에 휩싸인다. 그리고 웃음을 통한 이 대면과 균열 뒤에, 생각해보도록 성가시게 부추기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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