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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Aug 15. 2020

침수의 시절

비에 대한 한탄과 몽상


사 주 째 비가 오고 있다. 도시는 물에 잠긴 듯, 청록빛 새벽과 먹빛 오후 사이로 끝없이 비가 내리친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숨은 답답하다. 벽과 벽, 뼈와 뼈 틈으로 차오른 습기가 도저히 마르지 않는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에는 사위를 요동치는 비바람에 우산은 뒤집어지고 옷과 신발은 몽땅 젖어 하루종일 물기 배인 먹먹한 상태다. 음식까지도 습기가 침투해 국물도, 마른반찬도, 냉수 한 컵 조차도 눅눅하다.  


반도 전역에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폐수의 색을 띈 이 두터운 구름에게는 장마나 집중호우라는 이름은 너무도 사소하다. '기상이변', '폭우', '재앙' 같은 명칭이 대신 호명된다. 지구의 기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물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기상에 대한 미학적 몽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이야기했던 김홍중의 글에, '기후재앙' 같은 단어를 넣어 다시 읽어본다.


 "지구상의 모든 구름은 더이상 바슐라르가 말하는 "책임 없는 몽상", 보들레르가 말하는 "기상학적 아름다움들"등의 상징계로 수렴되지 않는다. (중략) 시인의 청각에 우주의 가장 신묘하고 정겨운 소리로 들려오는 바로 그 빗방울들에 의해 죽어가는 생명의 입장 때문이다. 자연의 4대 원소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미학적 쾌락과 음미와 몽상은 더이상 순수한 향유일 수 없다. (중략) '기후재앙'의 시간은 시인의 웅장한 상상력에도 오점을 드리운다."  


 어떤 낭만화도, 울적한 즐거움도 넘어서버린 이 물줄기는 8월을 눅눅하게 잠식해가고 있다. 비의 상상계는 이제 더 이상 감미로운 촉촉함에 머물지 못하고, 흔들쳐 온갖 형태들을 풀어버리는 거대한 구정물이나 불쾌한 곰팡내를 연상시킬지 모른다. 비의 심상은 점점, 정화된 공기나 더 선명해진 대지가 아니라 미생물의 번식을 암시하는 꿉꿉함이나 비위생과 연결될지 모른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가 지독한 이명처럼 창밖에서 웅웅거리고, 물줄기가 잠잠해질 즈음이면 매미들이 배를 헐떡이며 끊이지 않는 메아리로 대기를 채운다.

어서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고 싶다. 이 오랜 침수의 시절이 그만 걷혔으면 좋겠다.







지난 주에 썼던 글.

비가 그칠까 싶었는데 오늘 또 다시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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