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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Apr 16. 2021

계단

건물의 한 틈

  계단에 걸터 앉았다. 자동불이 꺼진다.

  딸깍, 우웅-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멈추고 문이 열린다. 멀리 어딘가에서 누군가 비밀번호를 치고 집으로 들어간다. '잠겼습니다' 하는 경쾌한 목소리, 그리고 잠잠하다.

   건물이 내는 소리, 공간의 공 이 내는 소리, 입을 다물었을 때 입천장과 혀 사이 빈 공간에서 날 법한 그런 소리 안에 있다. 초록색 비상등만 이 그늘 공간에서 말없이 빛을 밝힌다. 나는 계단에 앉아 있다. 시간이 흐른다. 나는 무용한 무언가를 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



  계단을 처음 발견한 것은  다섯살  되던 해이다. 나는 현관문을 여는 대신   계단에 앉았다. 낡은 은색 광택의 엘리베이터가 앞에 있다. 숫자가 올라갔다 멈추는 것을 보고, 엉덩이가 차가워질 때면 왼쪽 오른쪽으로 들썩거리고, 소리가 십사층에 가까워 오면 가방을 들고 한두층 내려가 기다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나면 제자리로 간다. 핸드폰을 하기도 하고 가만히 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 희석되었고, 아주 조금 누그러졌고,  문턱을  얼굴로 넘을  있었다.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닌 곳, 닫혀있지도 열려있지도 않은 곳,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곳, 모두를 위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곳. 건물의 이 한 틈은 지금과 다음 사이에, 왁자지껄함과 고독 친구와 가족 침묵과 대화 사이에, 긴 띄어쓰기처럼 오래,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무게는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그러다 문득 일어난다. 비밀번호를 치고 열리고 문이 닫힌다. 잠잠하다. 자동불이 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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