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차/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by 집녀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적혀 있는 말이다.

정확한 말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거다. 영어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오역일 거란 생각이 들 것이다. 의역이든 오역이든 맛깔스러운 문장은 역시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가 아닐까. 그가 무슨 의도로 이 말을 남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문장을 듣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미련과 후회“

나는 미련과 후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바로 산책 남이다. 산책남과 잘 되고 싶지만 말을 걸 수 없다. 그럼 미련이 남을 것 같다. 용기를 내 산책남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싫다는 말을 듣고 괜히 말했나 후회를 할 것 같다. 남들은 고작 그 나이에 그 고민이나 하고 있나 싶지만 지금 나에게 닥친 고민은 이게 가장 절실하다.


물론 인생 전체로 봐서도 미련과 후회할 일은 수천, 수만 가지가 된다. 생각을 확장하면 끝도 없다. 나의 인생 자체가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삶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 사례들을 일일이 꺼내 생각하면 그것은 자살 행위와 같다. 굳이 애써 잊고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예전 고민을, 앞으로의 고민을 꺼내 들고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지금 당장 시급한 일에 매진하고 싶다. 어쩌면 가장 현명한 일 아닌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우울한 날로 가득한 내게 산책남 만이 유일한 활력소다. 생각하면 행복한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산책남과의 일이 미련이 될지 후회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하기만 두고 보고 있기에는 시간이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서든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산책남이 나타나지 않는다.


생각도 없던.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지나가던 여자. 아니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건다면 남자는 어떤 생각이 들까? 당혹해할 것이다. 기분까지 나빠질까? 산책남의 심리를 알 수가 없다. 지금으로서 확실한 것은 말을 건 다음날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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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남은 요즘 자주 나오지 않았다. 오늘도 같은 이유로 안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자꾸 산책남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어제 인사를 한 것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가 놀래서, 두려워서, 기분 나빠서 피한 것이 아닐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적어도 산책남과의 관계가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물쭈물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은 비웃을 일이지만 엄청난 용기를 내서 ‘하이’라고 외친 것이다. 나를 제발 쳐다봐 달라는 애절한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후의 일들을 기대했었다. 산책남을 다시 마주치면 관계에 진전이 생기기를 바랐다. 그런데 뭐. 나타나지를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삶은 생각 외로 가볍다. 괜히 무게 잡을 필요가 없다. 괜히 고심할 필요 없다. 괜히 망설일 필요 없다. 바람에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생각 없이 살고 싶다. 물론 말만 그렇다. 난 이러한 삶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우물쭈물 살았다. 나의 삶은 힘찬 전진도 방어를 위한 후진도 없다. 그냥 얼떨결에 서 있는 정도다. 우물쭈물 서 있는 삶이다. 이럴 경우 삶은 변하지 않는다. 발전도 도태도 없는 삶이다. 그냥 서 있기만 한, 그냥 버티기만 한 삶을 살아왔다. 걷기를 시작하며 나의 삶이 제자리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젠 그것을 벗어날 때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