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남에게 인사를 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말이 하고 싶었나. 간절히... 그토록 간절히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단 두 글자. ‘하’‘이’! 사실은 하이가 아니라 다른 말이 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다.
요즘 잘 보이지 않았다. 매일 나오던 산책남이 사흘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꼴로 산책을 나왔다. 얼굴을 봐야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매번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도 아쉬운 판인데 아예 얼굴을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타났다. 도대체 며칠 만인가! 나타나 준 것도 고마운데 이번엔 심지어 눈까지 마주쳤다.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반사적, 절박한 심정으로 튀어나온 말이 바로 ‘하이’이다.
속으로는 수십 가지 말을 생각해 놨다.
가 가장 기본이고
날씨가 더울 때를 생각해서 생각한 말이고
역시 날씨를 가정해 생각한 말이고
관심을 드러내는 말이고
더 관심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 많은 수십 가지의 경우의 인사말 속에서도 ‘하이’는 없었다. 적어도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문장이었다. 그런데 왜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하이가’ 튀어나온 것일까. 그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산책남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안녕하세요’ 다섯 자를 말하기 전에 지나갈 것이 분명하다. 신속이 생명이다. 남자를 붙잡을,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말을 짧게 해야 한다. 그래서 튀어나온 말일 것이다.
바보 같다. 왜 그렇게 했을까. 한국 사람인 거 뻔히 아는데 왜 하이라고 했을까. 게다가 실수까지 했다. 하이를 하며 손까지 흔들었다. 손을 흔드는 것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친한 사람들끼리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턱대고 손까지 흔들며 하이라고 해버렸다. 건방져 보였을 것이다.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질러 버렸다.
그런데 산책남이 반응을 해줬다. 그도 인사를 해줬다. 그도 ‘하이’를 했다. 엄청난 발전이다. 산책남의 반응에 힘을 얻어다. 아직 한 바퀴 더 남았다. 산책남의 평소 운동 습관은 두 바퀴다. 더 볼 수 있다. 그때는 꼭 ‘안녕하세요’라고 말해야겠다. 그리고 혹시 시간이 된다면 뒤에 말을 더 붙여 보리라.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갑자기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은 한 것이다. ‘하이’ 단 두자였지만 시작은 텄다. 지금부터는 어떻게 이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운도, 설렘도 그걸로 끝이었다. 산책남은 충격으로 집에 돌아갔는지. 아니면 속도를 달리해 마주칠 기회를 놓쳤는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관계의 시작! 그것은 인사로 시작한다. 인사를 했다. 그럼 된 거다! 내게 많은 것이 없지만 결정적으로 없는 것은 용기다. 가만히 뒤돌아 보니 정말 놀랍게도 용기를 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엔 용기를 냈다.
물론 단 두 글자에 불과한 용기였지만 말이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