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일 차 /참을 수 없는 발걸음의 무거움

by 집녀

‘턱턱턱턱’-몸이 무거워 걷기 힘든 소리

‘터벅터벅’-지겨워 억지로 걷는 소리

‘타박타박’-몸에 힘을 빼고 걷는 소리

‘타다다다’-깃털 같이 몸이 가벼운 소리


그날의 몸의 상태에 따라 걷기도 달라진다.

‘타다타다(깃털같이 몸이 가벼운 소리)’를 바라지만 ‘턱턱턱턱(몸이 무거워 걷기 힘든 소리)’이 될 때가 대부분이다. 걷기도 점차 일상이 되고 새로울 일이 없다.


오늘은 ‘터벅터벅(지겨워 억지로 걷는 소리)’으로 시작한 참이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 나아지지 않는 미국 상황, 글도 제대로 못쓰고 무기력감에 우울한 날이다. ‘지지리 운도 없는 팔자’이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다. 정체기, 슬럼프. 우울증 이런 단어들만 친구 하자며 다가온다.


억지로 걷기에 나왔다. 풍경도 예전처럼 살뜰하지 않다. 지금 이러고, 여기서 걷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도대체 이 곳에서 뭐 하고 있는 것인지 화가 났다. 매일 보던 사람들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조지아 주가 외출금지령을 해제하면서 이제 사람들이 다른 곳에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물론 예전처럼 막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엄격한 제한이 어느 정도 완화된 셈이다. 경제 활동도 일부 재개가 되면서 할 일이 있는 사람들은 서서히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갈 곳이 없다. 대놓고 여행을 가기는 무리다. 음식점이고 카페고 안 가본 지 두 달이 넘었다.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싶었다. 말이 하고 싶었다. 눈동자를 바라보며 감정을 읽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가끔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어도 귀찮아서 안 만났다. 외로움의 원인과 선택은 철저히 내게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 사람이랑 대화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아무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없다. 사회 속에 있지만 혼자 무인도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이 기분이 증폭됐다. 공원 앞 테이블과 벤치에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앉아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아직 실내에서 먹기는 부담이니 음식을 싸서 바깥에서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끼고 싶었다. 같이 웃으며 웃을 거리를 얘기하고 싶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떠들어도 되나요? 뭐가 그리 즐거우신가요?’

잠시 잠깐의 이상한 시선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말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용기는 없다. 혼자다. 불러줄 사람도, 찾아줄 사람도, 걱정해줄 사람도 없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고립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투명인간으로 사는 느낌이란....


눈물이 난다. 모자를 내려쓰고 외로움에 혼자 울어본다. 어차피 볼 사람도 없다. 신경 써 줄 사람도 없다. 오늘따라 많은 것이 없는 내 신세가 가여워서 미칠 지경이다. 집도 없고 남자 친구도 없고 젊음도 없다. 없는 것 천지다. 있는 것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뭐 어차피 살아 있는 것이 다 아니겠는가. 삶을 질로 따진다면 할 말이 없어지지만 양으로는 잘 버티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벅차다. 도저히 힘이 나지 않는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외롭다. 외롭다. 외롭다. 한심하다. 바보 같다.’


나만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뭐든 쉽게 이루는 것 같다. 착각인 것 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바보 같은 생각만 든다. 연애도 일도, 이직도, 돈도 왠지 주위 사람들은 다 쉽게 이루는 것 같다. 내 주위에는 유난히 능력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부러워서 질투 나서 마음이 쓰렸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지금 감정은 ‘너무 슬프다’이다. 모든 감정의 끝에는 슬픔 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걷다가 미쳐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걷다 보면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걷다 보면 잡념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오늘은 슬픔에 한 발을 내딛기가 힘든 상황이다.

걷다가 주저앉을 것만 같다.

발걸음은 턱턱턱턱(몸이 무거워 걷기 힘든 소리)으로 가고 있다.



(이 글은 코비드 19로 외출 금지령이 내려진 미국 조지아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20년 3월과 6월 사이 100일 동안 걷기 말고는 할 것이 없었던 한 여성의 '처절한'이야기입니다.)